아침,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본다.1986년 그러니까 24년 전, 멕시코시티 올림피코스타디움.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A조 예선 1차전에서 허정무 선수가 마라도나에게 태클을 가하는 모습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기억들이 많이 뭉개져버렸지만, 대충 이런 것들은 기억해 낼 수 있다. 지구 저편에서 전파를 타고 날아온 TV 화면 속 우리 선수들은 시작 전부터 몹시 주눅 들어 보였고, ‘없어’ 보였다.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우리 선수들은 낯선 땅에 내버려진, 그래서 몹시 황망한 처지에 놓인 듯 했고 상대는 먹잇감을 앞에
새해 연예가의 최고 핫 이슈는 김혜수·유해진의 공식 커플 선언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진 날, 거의 20년간 최고의 섹시스타로 군림해 온 김혜수가 유해진이 그녀의 연인이라고 밝혔고, 사람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만인의 연인에서 오직 한 사람의 연인으로 공식 발표되자, 못 먹는 감일지언정 가슴 가득 환타지를 안고 있었던 수많은 남자들이 급좌절했다. 만만하고 친근한 배우로, 동생이나 형, 혹은 친구 삼으면 딱 좋을성 싶던 유해진은 돌연 남자들로부터 ‘공공의 적’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순박하게 생긴 이 ‘공공의 적’은 그러나 응징의 대
올해는 걸들의 시대였다. 소녀시대의 로 시작된 소녀 열풍이 카라,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으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걸그룹들의 잔치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지지지’거렸고, 색색의 스키니 진이 알록달록 거리를 물들였다. 카라의 엉덩이 춤에 남자들이 넋을 잃었고, 그야말로 시건방지게 춤을 춘 브라운아이드걸스는 백억 원대의 수입을 올렸다. 꿀벅지란 말이 논란을 일으켰지만, 어린 그녀들도 섹시하지 않으면 주목 받지 못하는 시대임을 거듭 증명했다. 귀엽거나 청순발랄한 소녀들은 초딩들마저 하품난다며 외면하는 세상이 된
요즘 지하철을 타 보면 전에 없던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책 읽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 읽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무엇인가 읽고 사람들은 대개 남성들이었다. 지하철에서의 읽을 거리로는 신문이 최고였다. 지하철 가판대 신문을 사는 이들은 주로 남성들이었고 가판대 판매량을 늘리려는 신문사들 간의 경쟁도 치열했다. 스포츠 신문이 가판대 시장을 좌지우지 하던 시절, 서로 마감 시간을 앞당겨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경쟁하는 바람에 종사자들이 진땀을 흘려야 했다. 무가지에 밀
그는 그 집의 가장이다. 그 날도 그는 안방에서 뒹굴었다. 뒹굴었지만, 때가 되니 배가 고팠다. 뱃속에서 밥 달라 아우성을 쳤다. 참지 못하고 그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 보니, 식구들이 오손 도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와 두 딸은 그의 등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먹던 밥을 계속 먹었다. 그가 밥상을 보니, 그의 자리가 없었다. 그를 위한 숟가락도 젓가락도, 밥도 국도 없었다. 나머지 식구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밥 먹자, 하지 않았다. 그가 밥 먹는 식구들에게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어린 두 딸에게 말했다. 아빠란 존
방송가의 막장, 막말, 조작 바이러스가 심각하다. 마치 두더쥐 잡기 게임처럼 아무리 때려도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이 바이러스들은 내성이 하도 강해 웬만한 처방으로는 약발도 먹히지 않는다. 시청률 경쟁 탓이다. 이해하기 힘든 가족사, 기괴한 갈등과 복수, 끊임없는 악다구니와 패악적인 대사들로 뒤범벅이 된, 그래서 ‘막장’ 이란 수식어를 달게 된 드라마 이야기는 이제 생선 가게의 생선 냄새처럼 으레 그런가 보다 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 이미 죽고 없어진 시점인데도 멀쩡히 살아나 사랑을 하고 난을 일으키고, 배신하고 복수하
개그맨 김제동 씨의 KBS 2TV ‘스타 골든벨’ MC 하차 소식으로 연예가 안팎이 시끄럽다. 4년 동안 ‘스타 골든벨’을 인기 프로로 이끌어 온 그가 녹화 이틀 전에 MC를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은 것에 대해, 정치적 외압에 의한 일방적 퇴출이라며 비난을 쏟아 내고 있다. 김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노제 사회를 맡고 노무현 재단 출범식 문화 행사에 참여하는 등 전 정권의 입맛에 맞춘 정치적 언행을 일삼은 것에 대한 현 정권의 보복이라는 것이다. 김 씨의 중도하차가 고액의 출연료 문제 때문이라는 KBS 측의 설명은 옹색해
KBS TV의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1999년 9월 5일 첫 전파를 탄 지 십년이 지났지만 ‘그 놈의 인기’는 여전히 펄펄하다. 타 지상파 방송의 개그 프로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거나 아예 폐지한 것과 대비되면서, 그 위세가 사뭇 당당하기까지 하다. 많은 오락 프로들이 중학생들조차 ‘초딩용’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대는 한심한 꼴을 면치 못하는 게 현실이지만, ‘개콘’은 가족들이 함께 낄낄대며 공감할 수 있는 보기 드문 프로라 할 수 있겠다. 타 방송 개그 프로들이 ‘쉰세대’들로선 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얼마 전 버지니아주 알링턴 웨이크필드 고등학교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그는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을 주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또 “여러분이 무엇을 쓰든 그것이 나중에 얘깃거리가 될 수 있으며, 청소년기에 올린 충동적인 글이나 사진 등이 중요한 시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먼 나라 대통령의 이 말에 ‘아차’ 싶었다. 때마침 미국 시민권자인 한 재미교포 청년이 ‘충동적인 글’ 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뒤늦게 고초를 당하고 있었기
물결, 그것은 참으로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물결이었다. 일본 열도를 뒤덮고 중국 대륙을 거쳐 대만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를 돌아, 이제는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물결, 한류(韓流). 참으로 감미로운 이름이다.그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듯 싶다. 배용준과 최지우가 출연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방송을 타면서 일본의 아줌마 부대들이 열광했고, 그것이 거대한 물결의 진원이었다. 언론은 당시, 잃어버린 십 년에 대한 우울함과 중년의 나이에 뒤따르기 마련인 로맨스에 대한 갈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