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니스트 전경우

그는 그 집의 가장이다. 그 날도 그는 안방에서 뒹굴었다. 뒹굴었지만, 때가 되니 배가 고팠다. 뱃속에서 밥 달라 아우성을 쳤다. 참지 못하고 그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 보니, 식구들이 오손 도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와 두 딸은 그의 등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먹던 밥을 계속 먹었다. 그가 밥상을 보니, 그의 자리가 없었다. 그를 위한 숟가락도 젓가락도, 밥도 국도 없었다. 나머지 식구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밥 먹자, 하지 않았다.

그가 밥 먹는 식구들에게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어린 두 딸에게 말했다. 아빠란 존재는 도대체 이 집에서 뭐라고 생각하니. 아이들은 말이 없었고, 잠시 숟가락 움직이는 속도가 더뎌졌을 뿐, 이내 숟가락질이 계속됐다. 그는 문을 쾅 닫고 집을 나섰다. 그 날이 마침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그는 배우다. 무대에 서면,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된다. 근사한 군인이 되기도 하고 멋진 사업가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거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위엄 있는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그가 함박 웃으면 관객들도 함박 웃고 그가 울분을 토하면 관객들도 울분을 토한다. 그가 정치인을 조롱하면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하고 그가 배고픈 사람들 먼저 살펴야 한다고 설파하면 사람들은 알지 못할 부끄러움에 빠져든다.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박수치고 한숨  짓게 하는 그를 관객들은 훌륭한 배우라고 말한다.   

그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안방에서 뒹군 건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가 그날 마땅히 집을 나서야 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설 무대가 없었건 것인데, 무대에서 벌어먹고 사는 배우에게 설 무대가 없으니 곧 일이 없다는 것. 일이 없으니 나갈 곳이 없고 나가지 않으니 돈이 없었다. 돈이 없으니 식구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아내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배우인 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른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밥 먹자, 말하지 못한 건 순전히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 때문이었다고 했다. 어린 자식들은 아무런 죄가 없으며 돈을 넉넉하게 벌어다 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죄가 더 있으며, 따지고 보면 아내 역시 돈 못 버는 남편 잘못 만난 죄밖에 없다고도 했다.

소설 쓰는 김 아무개 씨는 제법 알려진 문단의 유망주다. 그는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어, 사람들은 그가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그가 어느 문학 시상식 뒤풀이에서 역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전세에서 월세로 옮겼으며 글 쓸 공간을 찾아 시골 곳곳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어느 풍경 좋은 시골집에서 민박을 하며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했다. 풍경은 끝내 주었으나, 아침에 나물 비빔밥, 점심에 나물 비빔밥, 저녁에 나물 비빔밥,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물 비빔밥이 고역이었다고 했다.

어느 명망 있는 시인은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살림을 차린 적도 있다고 했다. 고단한 가운데서도 늘 희망을 잃지 않는 시인은 고시원 찬가를 담은 시집을 내기도 했다. 고시원은 돈 없는 글쟁이들이 선택하는 글쓰기 공간 중 하나다. 얼마 전 서울 연희동에 문학인을 위한 창작 공간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다수의 가난한 작가들은 여전히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매고 있다. 

두 달 전에는 강원도 어느 도시에서 가난한 소설가가 빈집털이를 하다 철장신세를 지게 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글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었다는 사연이 비단 그만의 이야기만은 아니어서 더욱 가슴이 시리다.

오늘도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배고픈 가운데 창작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콘텐츠가 곧 경쟁력이라는 말은 하품 날 지경으로 많이 들어 온 소리다. 작가 없이 콘텐츠도 없다. 비단 문학뿐만이 아니다. 모든 예술 분야가 다 마찬가지다. 그들이 먹고 사는 문제없이, 적어도 작업 공간이 없어 혹은 설 무대가 없어 추운 거리를 떠도는 일만큼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