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사드배치가 원인일까. 다시 중국이 북한을 껴안으며 두 나라가 밀착하는 모양새를 감추지 않고 있다. 먼저 두 나라 관계의 역사를 잠시 반추하는 것으로 논평을 열고자 한다. 1950년대 중국과 소련이 협력하던 시기에는 오로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정치, 안보, 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북한과 중국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1949년에 북한과 중국은 수교를 했고, 1950년에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인민지원군을 북한에 파병했으며, 1953년에는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해, 경제·문화 협조 및 지원 협정을 체결했다. 1954년 북한과 중국 양자 간 총 교역액은 약 8000만 달러로, 중국 총 교역액의 약 3.4%를 점유했다. 1958년에는 중요물자 공급 협정 및 차관제공 협정을 체결했다.

1960~1970년대 중국과 소련이 갈등을 겪던 시기에는 중국과 소련이 서로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려는 경쟁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1961년 7월에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중국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고, 1961년 11월에는 통상 및 항해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1971년 9월에는 무상 군사원조 협정을 체결했고, 1973년 6월에는 경제기술협조 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1963년 9월에는 류샤오치(劉少奇)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고, 1975년 4월에는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했으며, 1978년 5월에는 화궈펑(華國鋒) 당주석 겸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1978년 8월에는 중국의 군사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다.

1970년대 말부터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북한을 지지하고 협력을 심화시킴으로써 대(對)소, 대(對)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1984년에는 북한의 3자회담 제의를 지지했고,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 시기에는 북한과 중국은 최고지도자들 간의 교류가 빈번했다. 김일성이 1982년, 1984년, 1991년에 중국을 방문했고, 펑전(彭眞)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상무위원장이 1983년에 북한을 방문했으며, 양상쿤(楊尙昆) 국가 주석이 1988년과 1992년에 북한을 방문했다. 또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는 1989년에 북한을 방문했고, 장쩌민(江澤民) 총서기는 1990년에 북한을 방문했으며, 리펑(李鵬) 총리는 1991년에 북한을 방문했다.

그러나 경제 등 실질 분야에서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서방세계와의 실리적 관계가 강화됨에 따라 대(對)북한 관계는 다소 소원하게 됐다. 1990년 한국과 중국 간 직교역 총액이 19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7% 증가한 데 비해, 동년 북한과 중국 간 교역액은 4억 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3% 하락했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안정된 주변 환경을 구축하고 북한의 급격한 몰락이나 미국의 대(對)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한다는 전략 하에 북한과의 관계를 정립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이전에 북한과 중국은 제반 측면에서 여타국에 비해 특별한 관계를 지속했다.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를 거듭 강조하고 북한의 체제유지를 지원했다. 양측은 공산당 및 외교부 간 대표단의 연례적 교환 방문 등 매년 당, 정, 군 사이에 상호방문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이후 북한과 중국은 전반적으로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냉전종식에 따라 군사적 동맹의식이 이완됐으며,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펼침에 따른 이념적 결속력도 약화됐다.

2013년 김정은 정권은 새로 등장하는 시진핑 정권의 면전에 제3차 핵실험의 잿가루를 날림으로써 등극하는 대국 ‘황제’의 분노를 사면서 두 나라 관계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제4차 핵실험이 진행된 올해 1월 6일 이후 평양 정권에 대해 ‘레짐체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흘리며 김정은을 압박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현재 중국의 태도는 돌변하고 있다. 한반도의 핵무기 방어용으로 배치되는 사드를 계기로 중국은 마치 ‘울고 싶을 때 때려주기를 기다렸던 아기’처럼 노골적인 반한 감정을 드러내며 북한을 껴안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이제 도발에서 중국에게는 ‘방어’라는 명분으로 탈바꿈하고 있으니 한반도는 다시 냉전시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김정은은 벼랑 끝에서 밧줄을 던져준 중국에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통일은 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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