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의 첫 데뷔 작품은 마식령스키장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문수물놀이장에 이어 과학자거리, 해당화관, 청년영웅발전소 등 건축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섰다. 그뿐이 아니다. 평양 국제공항과 원산 갈마국제공항 등 국제공항만도 두 개나 건설했다. 지금도 건설은 진행형이다. 금수산태양궁전에서 룡흥거리로 이어지는 여명거리가 그것으로 수십 채의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솟아오르고 있다. 우리의 궁금증은 자금이었다. 과연 어디서 돈이 생겨서 저렇게 건설을 줄기차게 벌리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아버지 김정일이 스위스에 숨겨놓은 비자금 40억 달러가 그 출처이거니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최근 북한이 중국에 서해 어업권에 이어 동해 어업권 일부도 매각한 것이 알려지면서 김정은 시대 랜드마크 건설의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이 서해에 이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조업권도 중국에 팔았던 것으로 8월 11일 드러났다. 이처럼 북한이 동·서해 NLL 조업권을 중국에 판매해 챙긴 수입은 연간 7500만 달러(약 820억원)에 달하며, 이 돈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 자금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당국의 한 소식통은 이날 “북한은 서해에 이어 동해 NLL 인근 조업권도 중국에 넘겨 외화벌이하고 있다”며 “최근 동해 NLL 북쪽 해상의 조업권을 중국에 판매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월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막히자 동·서해 황금 어장을 중국 어선에 열어주는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달 1일 국가정보원은 국회에 “올해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30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서해 NLL 조업권을 팔았다”며 “평년의 3배에 달하는 1500여척에 조업권을 준 것”이라고 보고했다.

달러 확보가 급한 북한이 서해에 이어 동해 NLL 조업권까지 손대며 수입을 3000만 달러에서 7500만 달러로 늘린 모양새다. 이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은 중계무역회사를 통해 중국 측에 조업권을 팔았지만, 앞으로는 북한 당국이 직접 조업권 판매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중은 지난 2004년 동해 공동어로협약을 체결해 중국 어선의 조업을 허락했으나, 군사 지역인 NLL 인근은 조업 구역에 넣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소식통은 “지금까지 이 협약이 유지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최근 동해 NLL 인근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이 900∼1000척에 이르는 것으로 식별된다”고 했다. 현재 북한의 동·서해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2500여척에 달한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연말이면 ‘인민군 수산 부문 열성자회의’를 열어 수산물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의 이런 지시를 ‘애민(愛民)’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동·서해 조업권을 중국에 판매함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수산물 증산 지시 이행과 중국 어선과 경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에서 조업권을 산 중국 어선들이 NLL을 남북으로 넘나들 경우, 우리 해군·해경 및 어민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커질 전망이다. 최근 중국 어선이 남북 중립수역인 한강 하구까지 불법 침입해 우리 군·경이 퇴치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이것은 북-중 사이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동·서해를 장악한다면 그것은 육지를 장악한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의 수산자원은 깡그리 중국의 수중에 넘어갈 것이며 그것은 결국 북한 해역 전체가 중국의 관할권에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로 주권상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북한 내륙의 광물자원에 이어 이제 해양의 수산자원까지 싹쓸이 해 가는 중국의 남하를 막을 힘은 어디에도 없다. 김정은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선대의 ‘주체사상’을 헌신짝처럼 집어던질 때 이미 알아봤지만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면 영해권까지 팔아먹는 그를 ‘21세기 이완용’이라고 저주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도 못 부르게 금지령을 내렸다니 차라리 중국의 일개 성장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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