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4월 중국 저장(浙江)성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북한 여성 종업원 12명을 법정 증언대에 세우기 위한 재판이 21일 열렸으나 탈북자들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탈북 여성들이 자진해서 한국에 온 것인지를 가리자는 것인데, 이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청구한 ‘인신 보호 구제 심사’를 법원이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인신 보호 구제 심사란 정신 질환이 아닌데도 타의(他意)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사람을 감금에서 구해내기 위해 쓰이는 절차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머무는 탈북자에 대해 법원이 국정원 보호의 적법성을 따지는 건 처음이다. 국정원은 탈북자들이 법정에 서면 북의 가족들이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보고 일단 법정 대리인만 출석시킴으로써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이에 앞서 민변은 탈출 종업원들을 증언대에 세우기 위해 미국·중국에 거주하는 친북 인사들을 동원해 북한에 있는 탈북자 가족의 위임장을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북한에 들어가 위임장을 받아 민변에 전달한 사람은 김일성 일가를 선전한 공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북의 탈북자 가족들이 썼다는 위임장이 진짜로 그 가족들의 본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정은 치하의 북한 주민들은 숨소리도 낼 수 없는 압제 아래 살고 있다. 마음으로는 자기들 딸이 남한에 잘 정착해 살기를 원하더라도 그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는 사회가 바로 북한 사회 아닌가 말이다. 법원이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탈북자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종업원들을 법정에 세운다면 자유를 찾아 탈출의 결단을 감행한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이 된다. 종업원들이 법정에서 ‘자진해 남한에 들어왔다’고 진술한 사실이 노출되면 북에 남은 가족들은 그 즉시 반역자로 몰리게 된다. 자기 고모부까지 고사총으로 쏘아 죽인 김정은은 최근 중국에서 한국인들을 납치해 탈북 여성들과 맞바꾸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린 상태다. 그런 나라에서 살아본 이 종업원들에게 거짓말을 해 북의 가족들을 보호하거나 진심을 말해 가족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금수만도 못한 짓이다.

만일 민변 청구대로 탈북 종업원들이 법정 증언대에 서게 될 경우 앞으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가 3만여명이다. 자칫하면 친북 변호사들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탈출해온 사람들을 법정에 세워놓고 ‘당신 자유의사 맞냐’고 추궁하고 드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이들이 국정원에 납치된 거라면 중국 당국이 이들의 출국을 허용했을 리 없다. 대한변협이 추천한 국정원 인권보호관 신분으로 탈북자들을 여러 차례 만난 박영식 변호사도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민변이 정말 그렇게 인권을 떠받드는 사람들이라면 왜 이제까지 북의 억압적 세습 왕조 체제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었는지 우리는 묻고 싶다. 무려 13명이 민간 항공기를 타고 유유히 몇 천리 길을 날아왔다면 거기에 강제성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또 민간 변호사들이 국가 정보기관이 하는 일을 놓고 왈가왈부 하는 일도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정녕 민변 변호사들이 탈북자들을 위하고 도와주고 싶다면 할 일은 많다.

탈북자들의 여론을 모아보면 사회로 나와 5년이 지나면 국가에서 보호하는 일을 그만두도록 되어 있는데 계속 감시한다고 하소연하는 탈북자들이 더러 있다. 이런 것을 민변 변호사들이 나서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또 이 사회 전반에서 탈북자들은 제일 아래 자리에 머무른 채 신분상승이 안 되는 일, 탈북자 관련 재단에 전부 정부가 내려 보내는 낙하산 인사들이 독점하여 탈북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일, 바로 이런 것들을 민변 변호사들이 나서 지금처럼 기를 쓰고 도와준다면 탈북자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공연히 저들 얼굴 생색내는 일에는 열정을 보이면서 진작 도와줘야 할 부분은 외면하는 모습들은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먼저 온 통일’ 현실은 ‘분단의 또 다른 희생자’들인 탈북자들을 가지고 제발 장난질들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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