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2010년 9월, 김정은이 북한의 3대 세습 지도자로 등장할 때 내세운 캐치프레이즈가 ‘단번도약’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오늘 실체가 드러났다. 김정은 정권은 잠수함 발사 핵미사일 SLBM을 성공시킴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일거에 뒤바꿔버렸다. 적어도 우리가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다년간 누려온 군사력에서의 우월적 지위는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됐다. 바다에서까지 북한 핵(核) 위협이 현실화됐다. 북의 20년 넘는 ‘핵 질주’는 조만간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해 실전 배치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물론 미국까지 핵무기로 농락하겠다는 김정은의 의도가 눈앞에서 펼쳐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국민을 지키는 준비를 해왔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우리 군은 북한 SLBM의 실전 배치가 일러도 3~4년 이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진국가들의 SLBM 개발에 기준을 맞춰 북한을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북한의 SLBM이 500㎞ 날아가자 그 시점을 내년 초반까지로 갑자기 앞당겼다. 이런 엉터리 정보 판단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국방과 안보를 외국에 맡기고 남의 일로 여겨온 나라가 필연적으로 맞게 된 위기의 한 장면일 뿐이다.

북핵의 탄생 자체가 우리 정치권의 방조 속에 진행된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북핵에 낙관적 태도로 일관했고, 노무현 정권은 북핵 개발은 일리가 있다고 했다. 그들이 집어준 돈은 햇빛이 아니라 북한의 비수를 벼리는 데 고스란히 투자된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북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작했을 때도 ‘인공위성’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러나 숨 쉴 구멍을 찾은 북 정권은 남북 화해가 아니라 정반대인 핵질주로 나아갔다.

북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켜 나가자 우리 정부는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와 킬체인(kill chain)을 대응책으로 내놓았다. KAMD가 미국 사드 정도의 능력에 도달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기대다. 킬체인은 북 미사일 발사가 명백할 때 사전 타격한다는 개념이지만 사드 1개 포대 배치를 놓고도 온 나라가 이렇게 사분오열인데 유사시 어떤 대통령이 핵 보유 국가를 대상으로 선제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는 이것을 가리켜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핵을 실은 북 잠수함은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감시할 테지만 연합훈련 같은 때가 아니면 수중 정보를 한국에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온갖 난관을 뚫고 독자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할 의지를 가진 정권은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나오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아직도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지)에만 매달려 있다. 그러나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 의문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지난 20년간 북한은 오로지 한길로 달려왔다. 핵탄두 개발, 소형화·경량화, 탄도미사일 개발에 이어 SLBM까지 확보했다. 대한민국 파괴를 목표로 한 집단이 이토록 집념을 불태우는데 그 대상인 우리는 그 긴 시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 터지면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여 “물샐틈없는 대비 태세” 운운한다고 무너진 군사 균형을 메울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북핵 미사일 실전 배치를 전제로 국민을 지킬 방위 전략을 장기적·종합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위협을 당하다 못해 불감증과 체념에 빠진 국민 앞에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간다’는 큰 그림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나와야 한다.

이제 김정은의 손에 마지막으로 들려질 무기는 수소폭탄 하나만 남았다. 올해 1월 6일 수소폭탄의 바로 전 단계인 증폭 핵분열탄 실험을 어느 정도 성공시켰으니 올 가을 제5차 핵실험을 성공시키면 수소폭탄 보유도 시간문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 정치권은 각성해야 한다. 앨빈 토플러는 인류 사회가 20세기에서 21세기로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 중 두 가지로 정당과 노조를 꼽았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집권당과 야당은 연일 빵빠레를 울려가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한반도를 초토화시킬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춤을 추고 있는 정치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프리카의 원시인들 보다 미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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