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다가올 2024년은 갑진년 청룡의 해다. 지금 온 세상은 용의 해를 앞두고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이를 어쩌나, 용은 그 운명을 다해가며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으니 말이다.

지구촌과 우리 인생은 원하지 않는 어떤 사연으로 인해 긴긴 세월 용의 권세와 주관 아래서 살아와야 했었다.

우리에게 생로병사가 있어야 했고 흥망성쇠가 있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면 얼마나 이해할까.

이제 해 아래서 밝혀지지 않을 것이 없는 때를 맞이했다.

그동안 용이 우리 인생과 지구촌을 통치해왔지만, 이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때가 찾아온 것이다.

다시 말해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사건과 사연으로 인해 용에게 지구촌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고, 긴 세월 지나 본향으로 돌아오고 회복되는 때를 맞이한 것이다.

그 옛날 동방(東方)의 사건 즉, 아담의 범죄로 낙원이었던 지구촌이 실낙원(失樂園) 곧 창조주 하나님의 낙원은 떠나가야 했다. 지구촌은 사망의 주관자 용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오늘까지 세상을 주관해 왔음이 드러나고 밝혀지는 때가 온 것이다.

이는 한 사람(아이)의 희생으로 인해 이김의 역사가 있었고, 이로써 잃어버린 동방의 에덴을 회복하는 피의 역사가 시작됐고 결국 이겼다.

십승지(十勝地), 곧 이긴자들의 출현으로 지구촌을 다스리는 용은 그 정체가 낱낱이 밝혀져 발붙일 곳 없으니 그 기운은 쇠약해졌고 결국 그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도 과연 그 누가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쓰고 알려야 하기에 운명과 사명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

한편으론 지금은 몰라도 그 언젠가는 오늘의 이 글이 증인처럼 될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사실인즉, 1984년 3월 14일 대 갑자년이 찾아와 지구촌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세상은 무지하고 몽매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목도하고 인지하고 있는 사실 하나로 이해를 요구해볼 것은 임금(왕, 대통령)이 있는 곳엔 늘 용 형상이 좌우 대칭으로 그려지고 붙여지고 새겨져 있어 왔다.

나아가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眼)이라 했고, 옷은 용포(龍袍)라 했듯이, 영(신)인 용이 이 세상 주관자를 들어 함께 자신의 사상과 뜻대로 주관하고 통치해왔음을 증명해 주는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용(龍)의 문양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봉황(鳳凰)의 문양과 그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이젠 깨달을 것이다.

이는 바로 지구촌의 주인이 바뀌고 있고 바뀌었음을 우리에게 알리는 신호고 증거다.

예부터 우리는 천지를 분간하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들어왔으니 그것은 오늘을 위한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천지(天地) 곧 하늘과 땅을 구분 못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정녕 가고 오는 시대 곧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대가 부지불식간에 찾아왔을 때, 그 사실을 알리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때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깨달아 분별하라는 부탁이었고 시대적 명령이었음을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그러함에도 세상은 한밤중이 돼 천지를 분간 못 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천지분간 못하는 대표적 증거가 바로 용의 해를 바라보는 습관적 바람과 전망이다.

실례로 2024 청룡의 해를 일컬어 ‘선거의 해’라 불릴 정도로 미국 대선과 인도 총선 나아가 대한민국 총선 등 세계 약 50개국에서 일제히 투표행렬에 나서게 될 것이다.

선거는 그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엄중한 행위 중 하나다. 그러한 선거가 중한 이유는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군자(君子)의 나라’라 일컬음을 받아왔다.

공자는 이 군자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라 했다.

먼저 군자는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기에 백성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것이다. 지도자로서 그에게는 ‘백성이 곧 하늘’이다.

공자는 이러한 군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다시 정의를 내렸으니 곧 ‘군자삼면(君子三面)’이다.

우선 군자는 위엄이 있어야 하며, 그 위엄 속에는 인애와 자비와 온유함과 긍휼함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매사에 이치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로 지혜를 겸비하며 설득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했다.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아무나 도달하기 힘든 길, 그 좁고 협착한 길을 늘 자신과 싸워 이겨내며 걸어가는 그 모습(頭陀行)을 본다면 어느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군자와 같은 지도자를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행하는 것만 보고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 그렇기에 군자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자신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아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즉, 팬덤과 이념몰이 등 온갖 잡스러운 것으로 현혹시켜 분리시키고 어지럽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도 했는데, 이러한 군자삼면의 덕목을 갖춘 지도자는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오늘도 추운 겨울 이기고 온 목련화(木蓮花) 같고 그리고 인동초(忍冬草) 같은 이가 있다.

백마(白馬)와 그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기다리는 이유다.

나아가 그를 통해 출현하는 도통군자(道通君子)들이 있다 하니, 말세지말을 만나 허무한 데 굴복당하고 속절없이 살아온 만물은 그들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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