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이상면 대표이사. ⓒ천지일보 2022.08.01

우리 민족은 태초부터 그 어떤 민족 못지않게 많은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 사연은 기쁨과 환희보다 아픔과 치욕이란 글자를 떠올리게 하는 그야말로 아픈 역사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아프고 치욕스런 역사가 바로 일제 식민치하에서의 굴욕이니 조선의 종말이다.

이 세상엔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섭리요, 원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국민 곧 선민이 부패하면 매국으로 이어지고, 부패는 결국 외세 침탈이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멸망은 다시 자유와 독립이라는 회복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니 그야말로 섭리 중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통일신라가 부패했을 때 멸망과 함께 새 나라 고려가 건국됐고, 고려가 부패했을 때 새 나라 조선이 건국됐다.

이 대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실 하나가 있으니 곧 종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 시대가 출현할 때는 어김없이 종교를 앞세웠다.

다시 말해 종교는 새 시대 출현의 명분이 돼 왔다.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했고, 고려 역시 불교를 앞세워 새 시대를 열었으며, 조선 역시 유교(성리학)를 앞세워 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역사는 부패와 멸망과 새 시대 출현이라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우리가 인류 역사를 흥망성쇠의 역사라 부르는 이유다.

여기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발견해야 할 점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부패는 곧 종교의 부패라는 사실이며, 종교가 부패하므로 나라가 부패한다는 논리를 발견해야 한다.

이 사실을 다시금 일제강점기의 역사 속으로 데려가 보자.

고려는 불교의 부패 즉, ‘정교일치’로 멸망을 가져왔고, 이는 조선건국의 중심에 성리학을 앞세우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성리학을 앞세워 신세계를 열겠다는 다짐과 함께 시작된 조선은 유교의 교리가 아닌 명분논리에 갇혀 조선 500년사에 먹칠을 했으며, 그 먹칠은 주지하는바 대로 당파싸움이다.

명분논리는 결국 탐관오리를 양산시키고 매국의 길을 걸어야 했으니 구한말의 정치사며 부패사다.

결국 성리학이라는 종교와 정치는 하나가 돼 역시 부패의 길을 걸었고, 그 부패는 외세 침탈이라는 멸망의 길을 자초했으니 그 누구를 원망하랴.

안타까운 것은 명분과 정치와 종교의 부패는 그대로 유전되어 지금 이 강산에서 재현되고 있으니 오 애재(哀哉)라.

어찌 됐든 구한말 부패는 일제 식민침탈의 빌미가 됐고, 우리는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속절없이 살아가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들이 다 돼야 했다.

나라도 통치자도 정부도 말과 글도 심지어 찬란한 민족문화와 그 문화 속에 담긴 혼마저 송두리째 말살 돼 가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나라의 멸망은 구국의 당위성을 낳았으니, 바로 선각자(先覺者)들이었다.

오랜 세월 일제강점기 속에서 식민생활로 살아온 백성들은 일제 침략과 식민치하의 삶에 대해 만성이 되고 당연하다고 여기게 될 때쯤 그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수많은 독립투사가 산화했고 선각자들의 애국과 구국의 사연이 봇물 터지듯 넘쳐나지만, 특별히 당시 시대 상황을 잘 묘사했고 또 실존 인물이 포함되기도 한 심훈의 ‘상록수(常綠樹)’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제 식민치하가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때, 소설의 주인공(박동혁과 채영신)은 조선의 부패와 매국 그리고 일제침탈에 대한 사정 곧 원인과 결과를 알려주는 운동을 했으니 곧 농촌계몽운동이었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인 젊은 청년들은 하나둘 눈을 뜨고 정신(얼)을 되찾으며 구국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자주와 자유와 독립의 기치를 들고 상해로 만주로 길을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시대에 이 같은 사실을 알게 하는 이유는 진정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다른 차원의 부패와 멸망이 있고 나아가 회복의 역사가 있음에 대해서다.

우리나라는 물론 인류의 역사 속에 담긴 이 같은 순환과 순리의 역사는 바로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참 자유와 광복과 회복의 역사에 대한 깨달음과 참여를 위해서라면 얼마나 이해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굴레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앞서 인류 역사 속에서 발견했듯이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였다는 사실이며 발견이다.

그렇다. 종교의 회복이 곧 자유며 평화며 광복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참 광복(光復), 이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진리 곧 작정하시고 정한 때가 되어 이루시는 역사, 그 역사 속에 원인과 결과 그리고 회복의 답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답을 가지고 역리 속에서 속절없이 살아온 인생들에게 역리 아닌 순리가 있음을 가르치는 이 시대의 상록수들이 온 세상을 푸르게 푸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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