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종교편향 의혹에 불교계 ‘부글’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찬송하고 있는 모습. (출처:뉴시스)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찬송하고 있는 모습. (출처:뉴시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끊임없이 발생하는 ‘종교편향’ 논란으로 정부와 불교계 갈등의 골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불교계는 현 정부의 종교 관련 정책 결정 등을 지적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 불교계를 대표하는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지난달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이래 지속적으로 통합이 아닌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간 종교간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의 종교편향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불교계 내부를 술렁이게 하는 사례는 윤석열 정부 장·차관 등 주요 보직에 ‘불자’ 인사가 전무한 것, 정부가 추진하는 이승만기념관 건립 후보지로 조계종과 태고종 총무원사가 있는 송현광장이 언급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또 윤 대통령이 그간 유독 보수 개신교 인사들과 친밀한 행보를 보여온 것도 불교계가 정부에 불만을 품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 인사를 둘러싼 불교계의 반발은 지난 17일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이 보도한 차관도 불자 전무… 해도 너무한 윤정부 불교 홀대’란 제목의 기사로 비롯됐다. 보도에 따르면 19개 부처 장관과 차관 중 개신교인은 9명, 천주교인은 2명, 무교인은 6명, 불자는 0명이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의 장차관, 대통령실의 참모, 군 장성에 이르기까지 불자(佛子)들이 거의 전무한 현실은 의도된 종교 편향”이라고 비판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도 “최소한의 종교안배조차 이뤄지지 않은 이 정부가 어떻게 국민통합을 말할 수 있는가”라며 “종교 편향 정책이 계속된다면 한국불교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사정책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이승만기념관이 조계종과 태고종 총무원사 인근 송현녹지광장에 세워질 예정이라는 소식은 불교계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은 보수 개신교에서는 ‘건국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높이 평가된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는 논평을 내고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며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고 우리나라의 안보와 국방을 튼튼히 하는데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한 이 대통령에 대한 홀대를 뛰어넘어 업적과 공을 기념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광화문 극우 집회를 이끌어 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전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역시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존재의 근원”이라고 추앙하며 그와 관련한 영화 제작과 대학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반대로 불교계에선 재임 기간 기독교 교세 확장을 위해 불교 내부갈등을 조장하고 불교를 탄압했던 인물로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 전 대통령은 1954년 ‘사찰정화 유시’를 발표하고 대처승(결혼한 승려) 축출에 나서 불교계의 반발을 샀다.

정부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던 불교계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계기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한불교태고종은 종단 차원에서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종교편향이라 할 수 있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전면 백지화하라”라고 촉구했다. 태고종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일본의 적산 사찰을 교회에 내주고 농지개혁으로 전통사찰의 고유 재산을 빼앗는가 하면, 대통령 유시라는 권력을 남용해 현대불교사의 태고·조계 분규를 야기시켰다”며 “오로지 기독교 세력의 확장과 지원을 위해 불교계에 분쟁을 만들어 교세를 약화시키고 사찰의 관리까지도 장악하면서 정교분리의 원칙마저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불교계의 의견을 묵살하고 기념관 건립을 강행한다면 각종 불상사와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을 것”이라고 범불교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고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예비후보)에게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 등이 안수기도를 해 논란이 됐다. 사진은 당시 안수기도를 하는 목회자들의 모습.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유튜브 캡처)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고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예비후보)에게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 등이 안수기도를 해 논란이 됐다. 사진은 당시 안수기도를 하는 목회자들의 모습.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유튜브 캡처)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도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진우스님은 지난달 27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관해 “이승만은 대처승과 비구승 간의 갈등 속에서 불교계 내부의 혼란만 부추긴 장본인일 뿐 아니라 기독교 사상에 너무 심취한 인물”이라며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국민통합과 화합을 저해하고 더 큰 불화를 야기한다”고 밝혔다.

또 “현 정부에서 고위급 인사 중에 불자가 너무 없다”며 “불교계 시각에선 엄혹한 지경에 이르렀고, 무시당하는 느낌”이라고 정부의 변화를 강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현 정권 초와 양상이 비슷하다. 윤 대통령이 헌법정신이 성경에 있다고 언급한 것과, 전남 신안섬에 ‘기적의 순례길’이 조성되고 ‘1004(천사) 섬’이라고 명칭을 내세워 홍보를 하는 것, 문화체육관광부의 캐롤 활성화 캠페인 등 정부의 정책이 특정 종교에 편향적이라는 반발이 계속 있었다.

종교 편향 논란 문제는 개신교와 불교의 대립으로 불거지면서 종교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성결교회연합회(한성연)는 불교계의 종교편향 지적에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며 “사실 종교 편향과 차별은 불교계 쪽에서 더 자주 발생했다. 정부는 그동안에도 문화재 보존을 명분으로 불교계에 천문학적 지원을 계속해 왔다. 올해도 문화재 유지보존을 위해 정부 예산이 921억원 증액됐다. 전통 문화재의 70%를 차지하는 불교계를 지원하는 예산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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