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성공회 선교사가 설립
예루살렘 성공회 교구 산하
선교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이스라엘 대피 명령 내린후
수백명 팔레스타인인 피난
“병원 공격, 반인도적 범죄”

가자지구 알할리 병원 폭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시신이 17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 있는 알시파 병원 천막에 놓여 있다. 이 폭격으로 최소 50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2023.10.18.
가자지구 알할리 병원 폭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시신이 17일(현지시각) 가자시티에 있는 알시파 병원 천막에 놓여 있다. 이 폭격으로 최소 50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2023.10.18.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지난 17일 폭격으로 최소 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병원은 현지 유일 기독교 병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8일(현지시간)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 있는 ‘알 아흘리 아랍 병원’은 1882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돼 지금까지 운영돼왔다. 20세기 중반부터는 남 침례교단(SBC)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됐으며 현재 예루살렘 성공회 교구 산하에 소속됐다. 

아랍어로 침례교를 의미하는 알마마다니(Al-Ma amadani)라고 알려진 이 병원은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22개 병원 중 하나다. 현지 보도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24시간 내 대피 명령을 내린 후에 수백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폭발을 피해 이 곳으로 피신했으며 병원 안뜰에 가족과 함께 피난처를 마련하기도 했다. 

알 아흘리 병원장 수하일라 타라지는 전 세계 기독교 지지자들에게 호소문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의 손에 있는 도구로 여기에 있다”며 “우리는 모든 갈등 속에서 이 병원이 부상당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병원은 앞으로도 화해와 사랑의 장소가 될 것”이라며 “이 병원의 역사는 우리 모두가 기독교도든 무슬림이든 유대인이든 하나의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신의 아랍계 기독교인인 타라지 원장은 이 병원에서 30년간 재임해왔다. 

그는 CT와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높은 실업률과 정전, 불안을 헤쳐왔다”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일어나기 몇 주 전까지 병원은 이미 환자들로 압도당했고 재정도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타라지 원장은 쏟아지는 환자들로 오전 8시에 근무를 시작해 새벽 4시에 끝났다고도 덧붙였다. 

병원은 17일 폭격 이전에도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성공회 연합뉴스국은 지난 14일 이스라엘의 로켓포 공격으로 병원 2층이 파손되고, 직원 4명 등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당시 성명을 내고 병원이 의료품이 부족해 위독하고 다진 환자들을 대피시킬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폭격에 대해 웰비 대주교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기독병원, 안전하다 생각했을 것”

중동 의학사학자 칼튼 카터 바넷 3세 석사 학위 논문에 따르면 1882년 개원한 이 병원은 당시 이 지역의 가난한 무슬림과 여성 등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세워졌다.

초기 병원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환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영국 선교사들은 병원 구내에 위치한 초등학교 학생들과 더 많은 이들을 전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은 이후 1954년 SBC 해외선교부(현 국제선교부)가 매입하면서 가자 침례 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30년 동안 운영됐다. 가자지구에서는 전도가 불법이었지만, SBC 선교사들은 이일을 전도를 위한 좋은 기회로 여기고 선교를 염두에 둔 가자지구 유일 간호학교를 열기도 했다. 

가자 침례 병원은 1956년 수에즈 사태와 그 지역에서 발생한 다른 사건들로 부상 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치료했다. 1957년부터 1967년까지 이집트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동안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병원을 방문해 병원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1967년 6일 전쟁 동안에도 병원은 계속 운영됐다. 병원이 병상을 추가로 수용하면서 당시 500명의 환자가 대피할 수 있었다.

1970년대 후반, SBC는 성공회 신자들에게 병원을 돌려줬고 성공회는 병원을 예루살렘 교구에 편입했다. 현재의 병원 이름인 알 아흘리 아랍 병원은 이때 당시 명명됐다.

가자지구 유일의 복음주의 교회인 가자침례교회 전 담임 한나 마사드 목사는 “17일 발생한 폭발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사람들이 기독병원이어서 더 안전할 것이라 생각해 찾아왔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가자지구의 기독교 인구는 약 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타라지 원장은 “아랍 기독교인은 유대인들과 무슬림들, 서방과 중동 사이에서 중재자가 될 수 있다”며 “우리에게 기독교는 모두에게 평화이고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수께서 돌아오실 때 단 한 명의 신자도 찾지 못할까 봐 두렵다”며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예루살렘 성공회 총대주교와 수장들도 성명을 내고 “병원에서의 학살을 단호히 규탄하며 수백명의 무고한 민간인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는 반인도적 범죄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국제 인도법에 따르면 병원은 성역이지만, 이번 공격은 그 신성한 경계를 넘어섰다”며 “가자지구에는 안전한 피난처가 이제 없다. 이것은 국제적인 비난과 보복을 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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