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현재 북한에는 김국기, 최춘길 씨 등 우리 국민 4명이 인질로 잡혀있다. 얼마 전 그들은 북한의 최고재판소로부터 무기 노동교화형을 언도받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북한의 어민 5명이 동해상에서 구조되고 그중 3명이 귀순 의사를 밝히면서 인질논란이 대두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일 동해 상에서 구조된 선원들의 송환 및 귀순 문제를 놓고 아직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북한은 현재 억류 중인 우리 국민 4명의 문제와 이를 연계시키려는 듯한 태도까지 보이며 남북 간 마찰음이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4일 동해 울릉도 인근에서 구조된 북한 어민은 모두 5명이다.

당시 이들은 배가 표류해 남측 해역으로 내려온 뒤 침몰하던 도중 해경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해경은 통상 북측 어민들이 표류해 우리 측으로 내려올 경우 어민들을 구조하기 전 귀순 의사를 확인한다. 이는 육지로 이동해 귀순 의사를 확인할 경우 북한이 이에 대해 “귀순을 종용하거나 강요했다”고 우길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만일 어민들이 모두 북측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힐 경우 우리 측은 별도의 육지 이송 없이 적십자 혹은 군 통신선을 통해 북측에 이를 통보한 뒤 해상에서 송환 조치를 한다.

이번에 구조된 5명의 북측 어민들처럼 귀순과 송환 의사가 갈릴 경우 일단 육지로 모두 데려온 뒤 송환 의사를 밝힌 어민들만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신병을 인계하는 것이 통상의 관례다. 북한도 관영 매체를 통해 귀순자들을 간혹 비난하는 것 외에는 이 같은 관례적 절차에 대체로 순순히 응해왔었다. 그런데 북측은 지난해 북한의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뒤부터 이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선교사 김정욱씨 등 우리 측 국민들이 북한 지역에 억류된 뒤부터는 이 같은 태도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측은 지난 10일 적십자 통신선을 통해 이번에 구조된 5명의 어민을 전부 송환할 것을 요구하며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3명의 인적사항을 알려주고 이들이 가족과 면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역시 동해 상에서 구조된 3명의 어민 중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히자 적십자 채널을 통해 우리 측에 “해당 어민들을 면담토록 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북측의 이 같은 전례 없는 언사가 정부가 억류 국민 문제에 대해 북측에 요구한 ‘변호인 조력’과 ‘가족 접견’ 등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측의 이 같은 변화된 태도는 억류 국민 문제와 인권 문제에 대해 동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타국에서 자국민이 범죄 행위 등으로 억류됐을 경우 통상 영사조력이 가능한 점을 이용해 마찬가지 요구사항을 우리 측에 압박하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측이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은 모두 북측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상정해 강제로 억류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 측 귀순자들을 모두 자발적으로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데 있다. 귀순자들은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난민’ 개념과 마찬가지 경우로, 따라서 이 같은 경우에는 ‘면담’ 등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관례다. 북측도 이를 의식한 듯 대외적으로 이들 귀순자가 “강압에 의해 억류돼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억류 문제가 국제적으로 불거지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물타기’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이번 귀순 어민 사건을 우리 국민 억류자의 송환을 거부하는 ‘핑계’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측은 특히 송환 의사를 밝힌 2명의 어민에 대한 신병인계까지 미루며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측은 지난 10일 이들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인계하겠다고 통보했으나 북측이 아무런 답을 주지 않으며 무산된 것이다. 한편으론 이번 사건이 이희호 여사의 방북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일단 북측의 요구사항을 모두 거부하며 송환 의사를 밝힌 어민들의 인계를 거듭 북측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북측의 면담 요청과 인적사항 통보 요구에 대해 “국제적 관례 등으로 볼 때 적절하지 않다”며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혀 이에 대한 북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북한이 잇따른 고위급 인사의 탈북 등에 민감한 가운데 이번 사건이 발생해 가뜩이나 어려운 남북관계가 새로운 갈등기에 직면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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