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역대 통일부 장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들로서 다른 대북정책 기관들과 충돌하지 않는 조화형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기껏 강성이라고 해봤자 아마도 김대중 정부 초기 통일부 장관을 맡았던 강인덕 장관 정도가 유일한 것 같다. 이는 다른 대북정책 기관들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안보 위주의 통일정책을 펴는 데는 긍정적일지 모르나 통일정책의 최고 컨트롤타워로서의 자기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월 취임한 이후 4월 말부터 통일부를 중심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4월 28일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지원이 5년 만에 승인된 데 이어, 5월 1일에는 민간 차원의 대북교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남북 교류 확대방안이 발표됐다. 5월 4일에는 6.15 공동선언 15주년 공동행사 준비를 위한 남북 민간단체의 접촉이 5년 만에 승인됐다.

한미연합훈련이 끝나는 4월이 지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해보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해석하는 여론이 팽배했었다. 그런데 얼마 뒤 안보기관의 긴급소식들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5월 13일 국가정보원은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고사총 처형설을 공개했다. 5월 27일에는 한미일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서울에서 회동을 갖고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6월 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500㎞ 이상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이뤄졌다. 북한 입장에서 보기에는 북한 내부를 동요하게 만들 수 있는 정보를 남한이 의도적으로 공개하면서 정치,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국정원의 현영철 처형설 발표는 관련 소문이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었다는 점, 한미일의 대북 압박 강화 합의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차원의 공조라는 점이 있었다. 또, 박근혜 대통령 참석 하에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한 것은 5월 9일 북한의 잠수함탄도탄(SLBM) 시험발사로 국민 불안이 높아진 데 대응하는 성격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현영철 처형설 발표를 우리가 선제적으로 한 점과 대통령 참석 하에 북한을 대상으로 한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공개적으로 진행한 점은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듯했던 정부의 움직임과는 다소 부조화스러운 것이었다. 한미일의 대북 압박 강화도 정부가 당시 남북관계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면 수위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한 사안이었다.

이런 와중에, 6월 15일 북한의 정부 성명이 나왔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기존 주장을 상당 부분 되풀이하긴 했지만 “남북 당국 간 대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며 대화 의사를 넌지시 내비쳤다. 같은 날 북한은 “불법 입국한 우리 국민 2명을 송환하겠다”는 의사도 표명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대화할 의사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타진하기 위해 낚싯줄을 드리운다기보다 두 사람을 보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작은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몇 시간 만에 바로 반응을 내놨다. “부당한 전제조건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북 간 상호 관심사안을 폭넓게 협의하자”는 내용도 들어있긴 했지만, ‘부당’이라는 말에서 주는 뉘앙스로 볼 때 북한 제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다.

6월 23일 저녁 홍용표 장관은 이번에는 가뭄을 매개로 한 남북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가뭄 피해를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뭄’이라는 재해를 통해서라도 대화의 통로를 뚫어볼까 하는 의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얼마 뒤 이와는 상반되는 정부의 조치가 나왔다. 정부가 26일 처음으로 국제적 차원에서의 독자적인 대북 금융제재를 발표한 것이다. 통일부 장관의 성의 있는 제의들은 얼마 못 가 정부의 강경책에 잠식돼 버리고 말았다. 바로 이래서 북한은 우리 통일부 장관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이다. 통일부 장관은 통일정책의 중심이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통일부 장관의 말에 무게를 실어줄 때 북한도 따라오는 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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