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국정원의 해킹 사건으로 한바탕 시끄럽다. 야당은 대목 만난 장사꾼처럼 정보기관을 공격하고 여당은 방어에 여념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두 소모적 자해행위와 같다. 결국 국정원은 치열한 남북한의 첩보전쟁에서 ‘훔쳐보기’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조직이다. 정보기관이 적대집단인 북한의 대남공작과 스파이활동에 대해 훔쳐보는 것은 자기 본분에 충실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일부 정치인에 대해 훔쳐보기를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야당이 발끈하지만 ‘죄’지은 것이 없다면 굳이 발끈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 아닌가.

훔쳐보기의 거창한 사례를 외국에서 한번 찾아보자. 1953년부터 미국과 영국은 베를린의 미국 측 지역에서 소련 측 베를린의 칼쇼스트(Karlshorst)에 있는 소련 공군사령부로 들어가는 일단의 전화 및 전신선을 도청하기 위해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이 터널은 MI6와 CIA에 의해서 공동으로 건설됐는데, 불행하게도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MI6의 선임정보관인 블레이크(George Blake)는 소련의 첩자였다.

블레이크는 터널건설과 관련된 계획이 수립되는 초기 단계에 참여했으며, 이 사실을 모두 소련 정보기관에 넘겼다. 그러나 도청되는 선로를 통해 송신되는 소련의 가장 민감한 전신 통화 내용은 암호화됐었다. CIA의 역사가 라넬라흐에 따르면 이 작전과 관련된 진짜 기밀사안은 CIA가 소련의 암호문서를 보통문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기술은 영국과 공유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블레이크는 이 점에 관해서도 소련에 보고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소련은 도청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암호화를 통해 보안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하에 민감한 서신들을 해당 전신선으로 계속 송신했을 수도 있다. 반면, 베를린터널 작전을 통해 수집된 정보는 영국과 공유됐다. 라넬라흐에 따르면 영국은 도청으로 수집된 자료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의 분석을 담당했다.

이 터널작전은 도청되고 있던 전선 하나가 폭우로 손상돼 수리되는 과정에서 소련에 의해 발견돼 1956년 4월 21일 종료됐다. 첫 서신이 도청된 후 1년 정도가 흐른 뒤였다. 당시 MI6의 베를린 지부에 소련의 첩자가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던 CIA는 소련의 발견을 우연한 것으로 간주했다. 물론 돌이켜보면, 소련이 자신들의 첩자 블레이크를 보호하기 위해 그 발견을 우연한 것으로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적대국과의 첩보전은 이처럼 먹고 먹히는 단순 논리가 아니라 숨기고 훔치고 속이는 기만과 교란의 ‘입체전쟁’이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이탈리아제 해킹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36개 나라 정보기관이 구입, 사용하고 있으며 놀랍게도 북한도 그중 하나다. 따라서 우리가 이 문제를 가지고 요란을 떨며 정보기관인 국정원을 발가벗길 경우 그것은 결국 북한의 훔쳐보기를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집권 첫 일성으로 CNC를 외치며 등장한 북한 노동당의 김정은 제1비서는 지난 2013년 8월 18일 “사이버 공격은 무자비한 타격력을 보장하는 만능의 보검”이라며 북한 정찰총국의 사이버전을 독려했다. 북한은 현재 노동당 대남부서와 국방위 직속 정찰총국 등 7개 조직에 유능한 해커 1700여명을 보유하고 국내외에서 사이버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역량 또한 420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어 그 규모에 놀라움을 더해 주고 있다. 북한은 2005~2007년 홈페이지와 이메일 해킹 등에 주력하다 2008년부터는 채팅(IRC)·백신·자료공유(P2P)사이트 등을 이용한 대규모 사이버 공격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야당의 정보기관 공격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이건 숨바꼭질도 아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정보기관을 정치쟁점의 중심에 놓는 야당의 정치행태는 국익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교각살우의 누만 남기게 될 것이다. 어느 정부라도(군사적 침공과 같이) 순수하게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위협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통치력이나 정부의 존재 자체에 대해 개인이나 집단들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의 경우 북한의 계속되는 사이버공격과 테러에 벌써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국정원 자체 시스템에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도 시정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적어도 남북한 대결의 첨예한 격전장에서 정보기관의 ‘훔쳐보기’는 장려돼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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