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8월 15일부터 남과 북은 ‘시간의 분단’이란 또 다른 분단시대를 맞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지난 8월 7일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 표준시를 빼앗았다”며 광복 70주년을 맞는 오는 15일부터 표준시간을 기존에 사용하던 동경시보다 30분 늦춰 사용한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이 시간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양은 일제 강점기 이후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표준시인 동경시를 써왔으나 8월 15일부로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간을 정해 사용하고 있다.

이에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월 7일 “동경 127°30’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현재의 시간보다 30분 늦은 시간)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표준시간으로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한다”며 “평양시간은 8월 15일부터 적용한다”고 보도했다. 계속해 “이는 지난 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른 것”이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과 해당 기관들은 이 정령을 집행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당국이 표준시를 변경하는 것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일본 기준에 맞춰진 표준 자오선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으나, 사회경제적 비용과 북한 당국의 남침에 대비한 군사작전 등을 이유로 현재까지 동경시를 사용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간악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삼천리강토를 무참히 짓밟고 전대미문의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일삼으면서 우리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는 천추에 용서 못할 범죄행위를 감행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는데 이야말로 선전선동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반도는 1908년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일본 표준시에 맞췄으며 이후 1954년에 동경 127.5도로 다시 복귀했으나 1961년 8월에 다시 동경 135도로 바뀌게 됐다.

시간분단의 엄중성은 당장 눈앞에서 나타날 것이다. 당장 개성공단의 경우 입출입 등에서 남북한이 사용하는 시간이 달라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향후 남북교류가 활발해질 경우 항공관제, 철도, 항해시간, 일기예보 등에서도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은 적어도 이런 문제를 다루고저 할 때 최소한 대한민국 정부와 협의하고 함께 바꾸자고 하든지 선결조치가 필요한데 마치 자신들만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앞서 감으로써 다시 또 다른 분단의 장벽을 만들어 냈다. 태양력의 시간이란 천문학적 체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나라는 아마도 북한 말고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싸운 프랑스도 독일의 베를린시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시간은 단지 과학일 뿐 거기에 이념적 색깔을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동경시간은 동경시간일 뿐 거기에 일본의 영혼과 이데올로기가 담겨져 있다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 말이다. 결국 평양은 다시 시간조정으로 역사적 고립과 폐쇄의 함정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아마도 북한은 ‘평양시간’ 설정으로 당분간 작은 이념적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다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과 폐쇄의 고립무원으로 빠져들게 되리란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요란하던 광복 70년, 분단 70년은 다시 역사에 묻히고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다가가고 있다. 우리 민족은 얼마나 더 멀어져야 한 덩어리가 돼야 한다는 절박감을 깨달을까. 평양 정권의 ‘평양시간’ 설정은 절대로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미 1997년 김일성의 탄생일인 1912년에 맞추어 이른바 ‘주체년호’를 만들어냈고, 이번에 다시 ‘평양시간’을 탄생시켰다. 이는 결국 북한이 이른바 ‘대동강문명’을 강조하며 이제 한반도 정통성의 중심이 평양에 있으며 그 정통성을 근거로 자신들이 유일 합법정부란 것을 강조하는 행보를 노골화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향후 북한이 또 무슨 정통성 거리를 만들어낼지 궁금한 가운데 분단국가는 두 갈래 철길처럼 끝없이 멀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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