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광복 70주년이자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아 추진된 민간 차원의 남북 공동행사가 막바지 단계에서 사실상 무산됐다. 민족 공동행사 북측 준비위가 지난 1일 서신을 보내 우리 정부를 비난하면서 6.15 공동행사를 분산 개최하자는 의견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측 준비위원회는 마지막까지 공동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이제 행사가 열흘가량 남은 상황에서 북측의 전격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 한 공동행사 개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남북 준비위원회가 지난달 8일 공동보도문을 통해 6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를 제2의 6.15 통일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6.15∼8.15 공동운동기간’으로 정하고, 6.15 공동행사를 이달 14∼16일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합의할 당시만 해도 남북 교류의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가 컸다. 교착상태의 남북관계에서 7년 만에 남북 공동행사가 개최된다면 아무리 민간 차원이라 할지라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새로운 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또다시 물거품이 돼버렸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동행사가 무산된 배경에는 두 건(6.15와 8.15)의 공동행사 개최지를 둘러싼 신경전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선양에서 가진 실무접촉에서 남북 양측은 6.15 공동행사는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8.15 행사는 장소를 두고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가 갖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남북한 어느 쪽도 양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남측 준비위에 6.15 행사는 그동안의 관례에 따라 평양에서 개최하고 8.15 행사는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냐는 견해를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측은 6.15 행사를 서울에서 하기로 합의했으니 8.15 행사는 당연히 평양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북한 당국은 우리 정부의 제안을 트집 잡아 추가 실무접촉 제안을 두 차례나 거부했다. 얼마든지 서로 협의하고 조정해 타결 지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우리 정부의 8.15 행사 서울 개최 제안은 말 그대로 우리 측 준비위에 의견을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개최지 선정 문제가 민감했다면, 양측이 일정 규모의 대표단을 각각 서울과 평양에 파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이런 의견절충을 위한 실무접촉 제안을 거부하더니 시한이 임박해 분산 개최를 통보해 왔다.

이번 공동행사 무산은 꽉 막힌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아마 장소 문제가 합의됐다 하더라도 행사의 성격이 또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순수한 사회문화 차원의 행사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은 정치색 배제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 간 트랙 2(민간 차원 교류)는 트랙 1(당국간 교류)의 개선 없이는 난망임이 다시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6.15 공동 행사는 물 건너갔다 하더라도 남은 민간차원의 행사들을 살려내려면 남북 당국 차원의 협조와 배려가 필수적이다. 남북 당국 간 대화 채널이 조속히 복원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남북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5.24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3월 26일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같은 해 5월 24일 정부가 내놓은 대북 제재조치.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인도적 지원까지 모든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 이 조치에 따르면 아무리 인도적인 목적이라 해도 사전에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대북지원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여기에 다시 메르스가 악재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빨리 메르스를 완전퇴치하고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 선수단이 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문경 세계군인경기대회에도 북한 선수단이 오도록 만듦으로써 침체기에 빠진 남북관계 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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