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쿠바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서부, 서인도 제도에 있는 나라로 1514년 에스파냐가 식민지 체제를 확립했다. 1868∼1878년의 10년 전쟁, 1895년 제2차 독립전쟁에 이어 1898년 미국과 에스파냐의 전쟁을 거쳐 파리평화조약으로 독립했고, 미국의 군정 후 1902년 완전 독립을 이루었다. 서인도 제도에서 가장 큰 쿠바섬과 약 160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공산국가이다.

북한과 흡사하게 반미사상으로 체제를 유지해 오던 쿠바가 반세기 ‘반제반미’ 구호를 내리면서 미국과 손을 잡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17일(현지시각) 미·쿠바 국교 정상화를 전격 발표했다. 1961년 단교 이후 53년 만이다. 미국과 쿠바는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특수 관계였다. 그러나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한때 정권 전복 작전을 시도했다. 1960년대 구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하면서 미·소가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일도 있었다. 미국은 50년 넘게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를 풀지 않았고, 쿠바 역시 국제적 반미 연대의 선봉에 서 왔다.

미국의 제재는 쿠바 경제를 최빈국으로 몰아넣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쿠바의 경제난은 심화됐다. 만약 북한 체제가 카리브해 거기에 있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다. 결국 쿠바 공산 정권도 점진적 개혁·개방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1993년 달러화 소지를 허용한 데 이어 90년대 중·후반엔 토지의 사적 소유와 종교 자유도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2008년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이 권력을 이어받은 이후에는 모든 일반인에게 휴대전화 소지, 호텔 숙박을 허용하는 자유화 조치를 취했다. 쿠바의 이런 개혁·개방 조치가 없었다면 이번 수교 합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하면서 ‘적(敵)과도 대화해야 한다’며 그 대상으로 북한·이란·쿠바를 꼽았다. 이란과는 미국의 주도로 핵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란은 지난해 개혁 정권 출범 이후 이런 변화가 가능해졌다. 이번 미·쿠바 수교 협상 개시로 이제 지구상에서 완전 고립된 나라는 북한만 남게 됐다.

북한과 쿠바는 1960년대 이후 서로를 ‘형제 국가’로 불러왔다. 그런 쿠바도 20여년 전부터 주민의 삶을 중시하는 점진적 개혁을 추진하더니 이제는 미국과 수교로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북한과 쿠바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쿠바에는 위대한 지도자는 있어도 개인숭배는 철저하게 자제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쿠바에는 단 1개의 피델 카스트로 동상이 없지만 북한에는 수백 개의 동상이 있고 김일성·김정일은 신처럼 숭배되고 있다. 또 있다. 쿠바에는 없는 핵무기가 북한에는 있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 3년 동안 3차 핵실험을 했고 대륙간탄도탄(ICBM)급 발사 실험을 실시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잠수함 발사관에 의한 핵무기 발사(SLBM) 준비도 서두르고 있다. 아직도 김정은은 제4차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한 정권은 핵도 보유하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핵무력 건설·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꿈인지를 하루라도 빨리 자각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한 고립무원의 처지를 벗어날 길은 없다. 과거 소련은 핵이 너무 많아 망한 나라였고, 오늘 쿠바는 핵무기 대신 개혁과 개방으로 살 길을 찾은 나라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다. 북한이 핵을 가진다고 그것을 ‘백두산강국’으로 찬미하거나 무서워 두려워할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북한은 소련처럼 핵을 끌어안고 기발을 내리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침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이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제2차대전 전승기념 행사 초청장에 그의 이름도 들어 있어 국제사회로의 ‘화려한 데뷔’가 예상되고 있고. 지금 가슴 두근거리고 있을 김정은에게 묻고 싶다. 전 세계 50여개 정상들이 모이는 그 자리에 김정은이 핵무기를 들고 갈 것인가? 아니면 북한도 개혁과 개방의 열차에 올라탔다는 진정한 선물을 들고 갈 것인가? 쿠바의 선택은 아직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김정은의 북한에 주는 최고의 텍스트다. 김정은이 새해 신년사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밝힌다면 ‘최고의 신년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