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오늘 최룡해 북한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오른다. 어느새 그는 ‘특사 3관왕’이 되어 버렸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그가 휴대한 ‘친서’ 내용이 무척 궁금하다. 기름진 만주벌판과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외면하고 머나먼 모스크바로 가 북-러 정상회담이라도 하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애원이 담겨 있을 것이란 추측만 엿보인다. 일본에 다가가려던 ‘제3의 길’은 너무 빨리 수정된 데서 북한 외교의 냄비근성을 읽을 수 있다.

일찍이 맹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理 地理不如人和)’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늘이 주는 때는 지리적인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인 이로움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는 뜻으로 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출범 3년이 다 되었지만 중국은 물론 우리 한국과도 화합을 못하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 대해서는 ‘1000년 숙적’이란 말까지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과연 북한이 지정학적으로 밀접한 중국을 버리고 어디까지 달아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북한의 모스크바 접근에는 한국의 ‘퍼스트 차이나’라고 하는 위협이 작용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특사 파견도 중국이 먼저였다. 지난 3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먼저 시 주석과 양자 회담을 하고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 응했다. 정상회담 횟수도 중국이 앞선다. 중국 역시 적극 호응하고 있다. 시 주석은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은 첫 중국 최고지도자다. 시 주석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한·중 동맹’까지 거론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 분위기도 중국에 경도돼 있다. 한·미 FTA에 비하면 한·중 FTA 반대는 훨씬 약과다. 하기야 미국도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동맹 약화’를 우려해 한국과 FTA를 서둔 측면이 있고, 이 때문에 재협상 등을 거쳐 비준까지 5년이나 걸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역할과 관련해 당장 공개할 수 없는 깊숙한 구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외형상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경향이 뚜렷하다. 또 결과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일본과는 멀다(近中遠日). 정상외교는 단기적 이해를 넘어 장기적·전략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최소한 통일이 완성될 때까지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불가피하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년을 맞은 독일이 미국과 어떤 관계인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 한·미동맹 없는 한국을 지금처럼 대할지 의문이다.

최근인 10월 중순 북한의 외무상 이수용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대장이, 그리고 이번에는 최룡해 특사가 파견되는 것을 보면 북한은 분명 ‘퍼스트 러시아’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북한은 한국의 사드와 킬 체인, MD체계 도입에 대비해 신형 전투기 구입 등 러시아에 다가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환경에 놓여있다. 현재의 미그-29체계로 향후 4년 안에 도입되는 F-35를 대하기에는 너무 열세가 크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즉 중국과의 지정학적 유대관계는 그대로 둔 채 당장 국제사회로 나가는 첫 관문으로 러시아를 선택함으로써 요동치는 동북아 환경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제2차 대전 후 모스크바는 북한 소비에트 정권의 산모였고 김일성 정권은 그 신생아였다. 이제 그 3대 손자가 다시 모스크바에 가고 싶어 특사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스탈린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 푸틴에게 김정은은 스탈린 앞의 김일성처럼 애교를 부릴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위태로운 평양정권을 살려야 한다는 갈급함에 체면은 내던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 정부는 멀어져 가는 북한은 붙잡을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밀착되면 벌써부터 개발이 시작된 철도와 광물자원, 항만 등은 남의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통일은 그만큼 멀어진다는 말이다. 안타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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