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일각에서 북한의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제안한 남북최고위급회담에 대해 논란이 있다. 과연 그 실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적 국가원수인 김정은이 뒤로 빠지고 형식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내보내는 건 아니냐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정부는 “김정은 나오는 정상회담”을 최고위급회담으로 인식하고 있다. 만약에 김정은 대신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나오면 그것은 최고위급회담이 아니라 그냥 고위급회담이 되는 것이다.

사소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정상회담의 북한식 표현은 ‘수뇌 상봉’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최고위급회담’은 북한의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회담을 가리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남은 1925년생으로 올해 90이다. 그는 이제 거의 서 있기도 힘든 고령의 노인에 불과한데 만약에 그가 최고위급회담에 나온다면 그것은 모양새부터 코미디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준비한 같은 해 8월 5일의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합의서’ 북한 측 문서에도 ‘수뇌’란 표현이 나온다. 당시 북측 문서엔 “수뇌 상봉을 위한 준비접촉을 조속한 시일 안에 개성에서 갖는다”고 되어 있다.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온 선언문에는 ‘단독 회담’이라는 표현만 나온다.

하지만 1차 남북정상회담에선 최고위급회담이라는 표현도 사용됐다.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6.15 공동선언에는 “(두 정상이)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했으며 최고위급회담을 가졌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 개최 예비접촉에 동의한다는 강성산 당시 북한 총리의 대남 통지문도 정상회담을 최고위급회담으로 명시했다. 1986, 1990년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일성의 신년사에도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 회의”라는 표현이 나온다.

실제로 정상회담 과정에서 이뤄진 김영남과의 만남에선 최고위급회담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남의 만남은 ‘단독 회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의 만남은 ‘회담’이라고만 표현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2일 “김정은이 얘기한 최고위급회담은 정상회담으로 본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해석이 옳은 것이다.

김정은은 남북정상회담을 열지 않으면 안 되는 정치경제적 배경이 있다. 우선 첫째로 올해 2015년은 김정은 시대가 열리는 ‘데뷔 년’이다. 이제 김정은은 과거에 연연할 이유가 사라졌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김정은은 김일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김정일만 한 차례 언급했다. 새 시대는 구시대와의 단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만약 올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비료와 식량지원 등 막대한 대북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김정은의 공’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5.24조치가 해제되고 금강산 관광사업까지 재개된다면 김정은은 완전히 체제안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도 이룰 수 없었던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의 종식을 김정은은 일단의 ‘퍼가기’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정부도 정녕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단숨에 조일 수 없다면 일단 화해 협력으로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데 어느 정도 인식을 모은 것으로 이해할 때 김정은의 꿈과 소망은 결코 일장춘몽이 아니다.

다음 둘째로 김정은은 올해 국제사회로의 데뷔도 함께 꿈꾸고 있다. 마침 러시아는 김정은에게도 5월에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행사의 초청행사 초청장을 발부했다. 시골 사람이 경제적 이유로 해외관광이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관광이 단체관광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과연 어느 누가 김정은을 단독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해줄까? 패키지 관광사업이 있다면 ‘패키지정상회담’도 있다. 김정은은 어느 날 갑자기 권력을 장악한 ‘철부지 지도자’이지만 영어도 꽤 하는 국제적 수준을 가진 인물이다.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그의 꿈은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얼굴에 철판만 깔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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