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다가오는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70주년 전승기념식에 남북한의 지도자가 모두 초청됐다. 평양에서는 벌써부터 김정은이 초청에 긍정적이란 반응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어제는 크렘린궁이 김정은 방러 확정발표까지 했다. 가고 싶은 데는 많아도 어느 누구 하나 초청장을 보내주지 않았는데 러시아가 손을 내미는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김정은이 마다할 리 없지 않는가. 청와대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상외교의 달인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초청 수락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 대통령은 웅장한 전용기로 유유히 모스크바로 날아갈 수 있지만 북한의 김정은은 교통편이 걱정인 모양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러시아에 갈 경우 그가 비행기에 각별한 애정을 기울여 왔지만, 안정성 문제 때문에 육로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김정은이 비행기를 탄다면 러시아제 일류신 IL-62나 우크라이나산 안토노프 AN-148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항속거리가 1만㎞가량인 IL-62는 북한이 보유한 비행기 중 유일하게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비행기는 기령(機齡)이 최소 30년가량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비행기가 오래돼 거의 아날로그 기기로 운용 중인 것으로 안다”며 “작년 11월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태운 채 모스크바로 향하다 기체 고장으로 회항한 기종으로, 자칫 잘못하다가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현재 김정은이 전용기로 이용하는 AN-148(2009년산 추정·항속거리 3500㎞)과 고려항공이 보유한 신형 TU-24(항속거리 6000㎞)는 항속 거리가 짧다. 정부 관계자는 “결국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IL-62를 이용하거나 다른 비행기를 이용해 중간에 급유해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비행기보다는 육로인 기차를 선호했었다. 지난 2001년 7월 모스크바 방문 때도 1주일가량 걸리는 기차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 김정은은 아버지처럼 한가하게 열차를 타고 14일 가량을 덜커덩거리며 시베리아를 여행할 여유가 없다. 김정은의 정치를 우리는 ‘접시돌리기형 정치’라고 평하고 싶다. 식탁 위의 12개 접시를 돌리는 곡예사는 바쁘다. 마지막 12번째 접시를 휘젓고는 재빨리 첫 번째 접시로 뛰어와야 한다. 김정은이 이 곡예사와 무엇이 다른가. 오늘은 고아원으로, 내일은 신발공장으로, 그리고 또 모레는 군부대를 찾아가야 북한 체제는 간신히 작동한다.

그의 부친 김정일은 아예 접시돌리기를 포기했었지만 김정은은 그 일을 그만두면 북한 체제가 무너질 상황에 도달해 있다. 부친은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그럭저럭 버텼지만 쪽박을 상속받은 김정은은 어느새 ‘접시돌리기 곡예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께서 김정은에게 이런 제안을 하면 어떨까. “내가 평양에 잠깐 기착할 테니 우리 한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날아갑시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희세의 남북정상회담을 합시다.” 처음에는 김정은이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남과 북 두 지도자의 동승과 하늘에서의 정상회담은 전 세계적인 뉴스다. 아마도 인류는 21세기 들어와 이런 빅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에 동의하면 김정은은 ‘인터뷰’의 코믹스러운 주인공에서 인류의 빅 스타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 말이다.

남북통일은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느냐가 가장 중요한 열쇠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고 김정은이 잡는 것이 순서다. 다행스럽게도 한반도에선 하늘의 경계선이 제일 희미하다. 만약 5월에 ‘하늘의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천명한 통일대박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분단 정권 수립 후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3월 제일 먼저 모스크바로 날아가 자신을 점지해준 스탈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김정은이 박근혜 대통령의 손에 이끌려 짜리 이후 가장 힘 센 지도자로 불리는 푸틴 앞에 서게 된다면 더 이상 폐쇄와 고립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무언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대통령님! 결단을 내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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