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세계 선진국은 한국 교육의 트렌드 변화와 교육성과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들의 관심은 한국의 교육에 국한되지 않고 분단, 발전상, 역사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끝임 없는 대화’라고 했던 E. H. Carr의 말처럼 한국교육은 민족 고난의 역사를 뚫고 일군 귀한 성과 중 하나다. 특히 일제강점 속에서도 건재했던 민족문화의 일면은 우리 민족의 애국심과 민족의지의 강도를 대변한다. 일제강점기 민족항일운동 속에서 우리 민족은 늘 민족교육에 주목하며 학교건립의 확산에 주력했다. 그것은 여성교육 부문도 마찬가지다. 평양의 구 제중원 자리에서 운영됐던 숭의여학교는 한국여성교육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주목받았다.

숭의여학교는 1903년 10월 31일에 개교한 후 신교육, 신문화, 기독교 교육은 물론 남녀평등사상을 주지시키며 한국여성의 자존감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서울의 배재학교, 경신학교, 평양의 정의여학교 등 타 지역 간 교류로 시대변화를 일찍이 감지해 여학생들의 항일저항의식을 드높이는 데 조력했다. 학내에서 자발적으로 결성됐던 송죽결사대는 1913년 9월에 초대회장인 김경희(숭의여학교 1회 졸업생)를 시작으로 활동했던 비밀결사대였다.

송죽결사대는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松)와 대나무(竹)를 지칭한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송(松)형제회와 죽(竹)형제회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나이가 많고 신망 있는 송형제회가 주도해 경성과 평양의 3.1만세시위와 평남도청 폭발지원 등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이 결사대는 대한애국부인회의 전신이 된다.

‘진리숭상, 진실한 인재’ 교육을 지향했던 숭의여학교는 그 시대에 부합되는 항일저항정신과 결합해 의로움을 앞세우는 한국여성교육의 또 다른 변화를 주도했다. 송죽결사대는 서북지방의 애국부인회를 통합해 ‘대한애국부인회’로 발족한 뒤 지방부인회를 흡수해 100여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는 여성단체로 주목받았다. 구성원들은 앞서 2.8독립선언의 주요인물로 활약했고, 3.1만세운동․임시정부활동의 주요인물로 부상하며 한국여성 독립운동의 맥을 이끌었다.

국내외 독립자금 모금은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여성조직의 바람을 일으켰던 송죽결사대! 그들은 사회통념에 예속됐던 전통의 울타리를 과감히 뚫고, 민족독립을 위해 일제의 벽을 돌파하려고 시도했던 한국여성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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