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1928년 8월 25일 자 ‘중외일보’에는 ‘중국 창공에서 여류비행사 권기옥 등이 국민군에서 활약…’의 기사가 게재됐다. 권기옥은 1924년 중국의 운남항공학교에 입학, 제1기생 졸업, 중국 공군으로 복무하면서 소령, 중령을 거쳐 대위를 달았던 한국 여성비행사였다.

이러한 그녀의 행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필자는 권기옥의 성장과정과 활동 면면을 조망해볼 때, 그 의지의 원동력은 조국독립에 대한 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제침탈로 민족독립을 향한 희망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던 시기. 전통과 근대, 저항이 혼재했던 그 시기에 한국 여성은 항일의지를 여성 항일활동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인 만세시위에 참여하거나 민족계몽운동, 독립활동에서 투쟁하는 여성의 행보를 보였다. 그 과정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항일운동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여학생의 역할도 컸다.

권기옥은 평양 숭현소학교를 거쳐 숭의여학교(11회 졸업생)에 수학 하면서 ‘송죽결사대’로 항일활동에 투신한다. 숭의여학교의 비밀결사대인 ‘송죽결사대(松竹決死隊)’에서 권기옥은 3.1만세운동을 위한 태극기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사회개혁운동을 추진했던 ‘결백회’와 농촌계몽운동을 추진한 ‘면려회’, 순회 민중계몽활동에 주력했던 ‘브라스 밴드단’ 활동, 평남도청 폭파지원 등 활발한 항일활동을 했다. 그러나 일본 감시대상으로 주목받게 되자, 상해로 탈출한 뒤 임시정부로 입성한다.

권기옥의 중국활동은 가슴에 담았던 꿈과 민족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아 ‘비행사’로 일어서게 된다. 16세에 서울 여의도 비행장을 주목 시켰던 곡예비행사 ‘스미스(A. Smith)에 대한 기억의 끝자락이 머나먼 중국 운남항공학교에서 피어난 것이다.

졸업 이후에는 북경 개혁성향 풍옥 상군의 항공대 입성, 동로군 항공대의 부비항원활동, 1932년 상해사변에서 비행기로 일본군에 기총소사, 중국정부로부터 무공훈장 수여, 중경 육 군참모학교 교관으로 활약한다.

▲ 여성독립운동가 권기옥 (사진제공: 심옥주 소장)
또한 그 경험을 토대로 임시정부에서 여성리더로 활동하며, 한국비행대 편성과 작전계획구상, 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계획참여는 물론 대한 애국부인회 사교부장활동 등으로 조국광복의 힘을 불어넣었다. 광복 이후 민족재건의 과정에서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 한국공군창설의 산파 역할을 자처한 공군의 어머니, ‘한국연감’을 발행한 최초 여성출판인으로 주목받았다.

역사의 한 자락에서 국민의 역할이 무엇이고, 독립운동가로서 무엇을 해야하는 가를 끊임없는 도전과 행적으로 담아내었던 여성독립운동가 권기옥.

그녀는 소리 없이 흐르는 시대의 물결 속에서 사 회적 통념을 뛰어넘기 위해 자신을 과감히 던졌다. 그런 그녀를 향한 수식어는 진정으로 독립을 염원 했던 여성최초의 공군비행사이자 여성독립운동가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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