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아침 신문에 한화이글즈 김응용 감독에 관한 기사가 났다. 야구선수로, 감독으로서 야구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40년간 우승 제조기로 승승장구하다가 올해 일흔 넷의 나이로 한화 감독을 다시 맡고서 처음으로 꼴찌를 한 후 담담한 심경으로 쏟아낸 ‘김응용 실패학(?)’의 이야기다. “야구가 가장 위대한 점은 매일 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는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 단장 게이브 폴의 말처럼, 김 감독이 올해 맞이했던 최악의 야구 인생이나 또는 세상의 일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실제성을 보여준 내용이어서 공감이 갔다.

김응용 감독은 프로야구 해태 감독 취임 첫해(1983년)를 시작으로 2000년까지 18년 동안 해태를 아홉 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고, 삼성 감독이 되고서는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등 프로야구 감독 22년 동안 소속팀을 가을야구(포스트시즌)에 16번이나 진출시켰다. 그야말로 최고의 명감독이었고 그를 두고 ‘가을야구의 전설’이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올해 한화 감독을 맡고서는 개막초기부터 시작해 13연패 끝에 1승을 한 치욕을 남겼고, 끝내 올 시즌에서 아홉 개 구단 가운데 꼴찌 성적을 낸 감독이 되고 말았다.

평생을 야구와 함께 살아온 그는 “야구가 무섭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토로했다. 김 감독은 23년 프로감독 생활에서 올해 처음으로 꼴찌 한 번 했는데 팬들은 냉정했다. 지금 상황에서 한화가 우승 한 번 하는 게 목표인데, 그러면서 인생 9회 말인 지금 역전 홈런을 한방 날리고 나중에 통일이 되면 고향땅(평남 평원)에 조용히 묻히고 싶은 게 소원이라는 기사를 보고서 필자는 ‘야구가 마치 인생사와 같다’는 말을 기억해본다.
야구 경기는 양쪽 팀에게 9회까지 공격과 수비의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준다. 야구가 9회 말이 종료될 때까지는 숱한 득점 찬스와 위기가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마치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맞닥뜨리는 개인의 인생사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도 어려운 시기가 닥쳐와도 이를 잘 극복하고 좋은 기회를 살려낸다면 그 삶은 성공할 수 있듯이, 야구경기에서도 실점 위기를 막고 득점 찬스를 살려낸다면 승리의 여신은 그 편에 설 것이다.

하지만 야구가 어려운 점은 누구든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주역이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이 야구가 인생사와 같다는 것이다. 개인 종목이든 단체경기든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로 승리를 따낼 수 있다. 그에 더해 감독의 용병술도 필요로 하고, 또 운도 한 몫을 하게 된다. 앞서 사례를 들었지만 김응용 감독이 어디 실력이 모자라고 전략전술이 미흡하여 13연패를 기록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2013년 프로야구 왕중왕을 가리는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페넌트레이스 4위였던 두산이 3위 넥센, 2위 LG를 차례로 이기고 올라와 1위 삼성과 맞붙고 있는 중이다.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은 아홉 게임을 치루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두산 선수들의 체력이 거의 바닥을 치는 상태여서 삼성이 유리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두산은 기적을 이루어내는 듯이 적지인 대구에서 두 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프로야구 31년 사상 페넌트레이스 4위로 올라온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번에 두산 선수들은 기적을 만들어 보겠다며 선수단이 똘똘 뭉쳐 ‘미라클 두산’의 명성을 떨쳐보자는 각오인데, 초반 기세가 무섭게 달아오르고 있다. 3주를 쉬면서 대비해온 삼성을 1차전에서 6점 큰 점수 차로 격파한 데 이어, 10월 25일 벌어진 2차전에서도 승리하여 우승고지에 2승만을 남겨두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최강자를 가리는 한국시리즈가 7전 4선승제(先勝制)라 아직 경기는 10월 28일 4차전을 비롯해 몇 번 더 남았다. 두산이 기적의 힘으로 승리하여 한국프로야구사를 다시 쓸 것인지, 아니면 삼성이 4승을 거두고 3년 연속 우승컵을 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관중 700만 시대에 선수와 팬들을 웃기고 울린 야구의 교훈은 반복되고, 울린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명언은 양키스에서 미국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포수로 월드시리즈 챔
피언 반지를 10개나 따낸 요기 베라의 말이다. 이 말은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의 시초가 되기도 했는데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3차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구를 한 한국시리즈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국가적으로 혹여 ‘9회 말 투아웃’ 상황을 맞더라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니 끝까지 희망과 용기를 가져볼 일이다. 그것이 바로 승리로 이끌 기적을 낳는 발판이 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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