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기초연금이 제도화되기 전부터 정부 내에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65세 이상 노인의 70%에 국민연금 가입기간 등과 연계하여 최고 20만 원 한도에서 차등 지급’하는 정부안이 확정됐지만 후폭풍이 만만치가 않다. 당초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 대해 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 공약은 진영 복지부 장관이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으로 있을 당시에 마련한 것이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치면서 현 정부의 복지공약 대강을 기초했다. 그러한 점이 인정되어 그는 박근혜정부의 초대 복지부 장관으로 등용된 인물이다.

지난 대선 때 대국민 복지공약들은 유권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하였고, 높은 투표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복지에 관한 공약들은 여야 후보나 정당이 함께 내놓은 것인데, 특히 기초연금은 일정한 수입이 없는 노인뿐만 아니라 장차 수혜대상이 될 중·장년층에게까지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실만 보더라도 노인복지에 대한 정부정책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보여준 단면이라 하겠다.

이 같이 제도화가 시급했던 기초연금이 새누리당 당초 공약과는 달리 계층과 금액이 줄어들고, 국민연금과 연계·지원되는 것으로 정부안이 확정됐으니 노인들의 실망이 크고 야당의 반발이 또한 크다. 만약의 가정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20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공약을 내걸고, 새누리당에서 현재 정부안과 같은 차등 공약을 내놓았다면 노인을 비롯한 유권자들이 과연 어느 당의 정책을 지지했을까? 한번 짚어보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경우로서 이해관계가 상충된 당사자들의 입장을 이해할 만하다.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선거에서의 공약은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나라곳간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공약을 집행해라는 것도 어패가 따른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면 그 꽃이 벌레 먹지 않고 온전히 결실을 맺기 위한 노력은 민주주의의 참 가치라 할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가가 되려면 실현가능한 공약을 재원대책과 함께 국민에게 알리어 정정당당히 심판받아야 하건만 무조건 당선되고 보자는 심사에서 헛공약을 남발한다면 이것은 국가의 장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국민에게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 정부 출범 후에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은 반드시 준수할 것이라 누누이 천명했고, 대부분 노인들은 박 대통령이 약속 하나는 잘 지키기 때문에 곧장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의 연금이 지급될 것이라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것도 사실이다. 노인들이 허탈해하고 중장년층에서도 반감을 가지게 하는 이번 정부안이 아직 국회에서 입법 절차가 남아있어 정부안 그대로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기초연금제도 입법화를 위한 국회 논의 과정이나 올해 국정감사에서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질책으로 이 문제는 정부가 곤혹을 치룰 것이 예상된다.

그런 실정인데, 복지정책을 총괄해온 진영 복지부 장관이 사퇴서를 제출했다. 진 장관은 정부의 기초연금 정책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대선 공약을 기초하고 깊숙이 관여한 당사자로서 무기력함을 느꼈다는 점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사퇴서가 일단 반려된 상태에서도 진 장관은 복지부에 출근하지 않은 채로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데, 자신의 입장과 다른 굴곡된 기초연금에 대한 정치적 소신에서 선택한 행동일 수도 있다. 또한 향후 국회 입법 논의과정에서 야당으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한 상태에서 공매를 맞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까지 깔려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복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사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그러기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누구든지 자신에 맞는 맞춤형 복지제도가 만들어져 영속적으로 정부의 시혜가 이루어진다면 쌍수로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복지는 재정이 필수적이므로 복지정책 결정에 앞서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와 같이 저세금 고복지 경향을 보이는 형국에서는 안정적인 복지제도 자체가 성공하기 어려워 앞으로 여러 가지 문제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대두될 것이다.

국민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복지제도는 박근혜정부에서 끝날 문제는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바대로 따른다 하겠지만, 현대 민주국가에서 복지는 정부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당당한 권리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朴정부가 많은 복지공약 가운데 잡화점식으로 조금씩 맛보일 문제가 아니라 한두 가지라도 영속적으로 이어질 완전무결한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인바, 기초연금이 바로 그렇다. 한번 시행하고서 박 정부가 끝나면 중단될 것도 아니기에 시행초기부터 신중해야 한다. 대선 때 내세운 복지공약 가운데 완급을 따져 정비하고서, 이와 관련된 세금정책을 손질하는 등 충분한 보완책을 내놓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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