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추석 연휴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다녀오거나 가족 친지들을 만났다. 먼 거리를 다녀오느라 피곤감도 있겠지만 반면에 조상에 대한 도리나 부모님 또는 형제들과의 만남을 통해 회포도 풀었을 테고 즐거운 시간도 가졌을 것이다. 명절은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정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므로 짧은 기간 먼 거리를 이동해 힘들어도 내심으로는 즐거운 마음이다.

예부터 추석은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최대의 명절이다. 그래서 “일 년 삼백육십오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에서 느끼듯 추석을 맞는 누구에게도 풍요로움과 편안함이 묻어난다. 이와 같이 추석은 남녀노소가 두루 즐기던 명절인데, 우리식 이름으로 하면 한가위, 가위, 가배(嘉俳), 가배일이고, 한자어로는 중추(仲秋·中秋) 또는 중추절이다. 이는 추석이 있는 달이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추석에 관한 내용은 고려시대 김부식 등이 쓴 <삼국사기>에 나온다. 신라 유리왕 9년, 길쌈을 장려하기 위하여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음력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한 달간 길쌈내기를 하여 승부를 가리고, 승자가 패자로부터 음식을 대접받고 함께 즐겼는데, 이것이 곧 가위라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역사서 수서(隨書)와 당서(唐書) 동이전 기록에 의하면, 신라조는 8월 보름이면 왕은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에게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을 주어 남자들의 무예를 장려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와 같이 추석은 신라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고유명절로 자리 잡아 왔던 것이다.

이번 추석기간은 연휴와 공휴일까지 합쳐 5일이고, 일부 기업체나 직장에서는 일주일가량 쉴 수 있었으니 여느 때보다는 비교적 긴 기간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귀경길에 오른 운전자들의 시간도 짧았는데 추석 다음날 고속도로상에서는 자정쯤 교통 정체가 풀렸다고 한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부산→서울 6시간 50분, 목포→서울 6시간 20분 등이었다고 하니 극심한 정체현상이 아니어서 민족의 대이동에는 큰 불편이 없어 다행인 셈이었다.

추석 당일이나 그 전후로 해서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깥나들이를 즐겼다는 보도가 났다. 기온이 30도를 넘나들 정도로 화창한 날씨 속에서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시내 영화관이나 공연장, 유원지 나들이에 나섰고, 야구장은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서울세끼리 맞붙은 LG-두산 경기에 2만 7천여 명이 찾아드는 등 만원사례를 이루어, 프로야구 관객이 3년 연속으로 6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이같이 명절 연휴기간 가족과 함께 운동장이나 공연장 또는 가까운 관광지나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음은 좋은 현상이다.

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그 기간 정치 이야기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민주당 대표 간 3자회담 결과와 관련하여 이러쿵저러쿵 각자의 변명에 열을 올렸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에 대해, 민주당은 여당과 청와대 쪽에 서로 대놓고 ‘국민의 저항을 받는다’느니 공격을 했는데 그러한 일들이 잠시간 묻어졌다. 대신에 귀성객들이 고향을 찾는 모습이나 가족끼리 야외를 찾아 구경하고 오순도순 모여 정담을 즐기는 보기 좋은 장면들이 뉴스에 보도되어 한결 편안한 명절 연휴를 보낸 것이다.

그렇고 보면 정치문제나 정부의 정책 집행과 관련된 행위 또는 경제부흥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은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핵심사가 되지만, 그 문제를 묻어두는 일도 때로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추석 연휴 동안 국민의 관심과 뉴스의 초점은 귀성길에 대한 정체 상황과 불우 이웃을 돕는 미담이야기 등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사가 주 관심인 것처럼 말이다.

막상 정치 현장에 접속이 되면 여야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정부 위정자들도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기 마련인 게 현실이다. 실체적 진실과는 상반된 온갖 루머들이 떠돌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흘리는 정치꾼들 또는 특정집단에 의해 국민의 마음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추석연휴가 끝이 났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정치인들은 가장 먼저 정기국회의 운영과 정치 현안을 두고 불꽃 튀기는 정쟁(政爭)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는 수를 둘 것이다.

혹자들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민생에 무슨 보탬을 주는가 하고 반문한다. 또한 일부 위정자들도 이 문제가 민생과는 상관없는 문제라 단정짓기도 하는데, 모든 행위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보장은 정권의 안정적 유지보다 더욱 소중하고 절대적 가치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현실로서 우리 앞에 전개될 갖가지 정치적, 경제적 현상들과 사회현상에서 정치지도자들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과 같은 큰 뜻을 헤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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