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바야흐로 지역축제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계절이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무르익는 천고마비의 이 맘 때가 되면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갖가지 이름의 축제행사가 성행한다. 축제가 워낙 많다보니 우리나라가 마치 축제의 나라로 착각할 정도로 날마다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들은 거의가 민간단체의 이름을 빌려 행사를 주관하지만 대부분이 지자체가 주관이 되어 주민의 세금이나 정부가 지원하는 돈으로 행사를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 해에 전국에서 열린 축제는 모두 2429개였다 한다. 이 행사에 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투입된 금액이 2594억 원인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소요 예산의 60% 이상인 1595억 원은 재정 상황이 열악한 기초단체가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광역지자체나 대도시보다 재정 사정이 어려운 시·군에서 열린 경우가 많은데, 그 가운데 지역축제행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남과 경북의 시·군으로 나타났다.

축제를 하는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를 통해 지역의 명성을 알리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적절히 유치하여 지역 상권을 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국가적 차원이나 재정적 형편을 따져보면 1회성, 소모성의 행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문화체육부 장관이 나서서 지역축제를 줄이겠다는 공언까지 했고, 지재부 장관은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등을 감안하여 국고가 10억 원 이상 투입되는 국제행사의 주관기관은 시·군이 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하기도 했다.

함평 나비축제나 금산 인삼축제, 보령 머드축제 등 오래전부터 그 지역의 명성을 이어오고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정을 받은 축제는 지속되고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1회성 축제나 단체장의 치적으로 일삼는 위장 축제는 예산만 축내게 되어 결과적으로 지역에 피해를 입히게 마련이다. 그러한 폐해를 잘 알기에 유진룡 문화부 장관이 나서서 “하나마나 한 일회성 지방 축제를 대폭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선 시장·군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돈으로 집행하지 않고, 단체장의 위상을 올려주는 것이므로 하나마나한 축제는 없다는 배짱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지역축제가 돈 먹는 하마이고, 재정효과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실패하고, 지자체장들이나 지방의원의 위신을 대변해주는 1회성 행사로 전락되는 게 다반사이다. 그런 가운데 명사찰 해인사로 유명한 경남 합천에 사는 어느 주민이 자칫하면 지방예산을 축내고 다른 지역에서 웃음거리가 될 소지가 있는 지역행사를 미리 막자는 취지에서 소송을 제기해 작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바로 ‘합천군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조례 무효확인청구소송’인데, 합천군이 많은 예산을 들여 시도하는 지역축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사건의 발단은 내년 3월 1일 합천군 탄생 100주년이고, 이 행사를 위한 기념사업에 최소한 군비 18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내년이 합천군의 100주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일이지만 지자체가 주어진 권한을 일탈하고 기념하지 않아도 될 일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지방자치의 일그러진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합천군(陜川郡)의 명칭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조 태종 3년(1413년) 10월 15일 전국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 탄생한 것으로 돼 있다. 그 후 일제치하인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재편성으로 인해 합천군은 인근의 삼가군과 초계군과 통합되어졌는 바, 특히 삼가군은 남명 조식(曺植) 선생의 고향으로, 일찍이 남명 선생이 “왜구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상소(上疏)에 대한 보복 등으로 삼가군이 강제로 폐군되는 등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합천군이 통합된 지 100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합천군에서는 역사와 그 내용에 맞지 않게 내년 3월 1일을 합천군 탄생 100주년이라고 하여, 지방의회에서 버젓이 ‘합천군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조례’를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업과 관련된 타임캡슐제작에 11억 원, 다큐멘터리제작 및 학술연구용역비 2억 5000만 원, 합천 100년사 책자발간 2억 2000만 원, 기념품 8000만 원, 당일 기념행사에 5000만 원 등 18억 원을 군비로 집행한다는 것인데, 합천의 탄생 600년이 넘었음에도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행사로 비쳐질 수 있다는 주민들의 지적이다.

합천군의 재정자립도는 12.1%에 불과하다. 지방세 수입이 135억 원으로 100주년 행사비 18억 원은 군 재정 상태에서 볼 때에 큰돈이다. 그 돈을 함부로 쓰는 것도 문제지만 지방의회에서 합천군 탄생 100주년 관련 조례를 만든 것은 정당성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합천군 홈페이지에서 합천군 지명 유래를 찾아보면 “조선시대 이후 호칭된 지명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 개편 시 주(州)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합천이라 하였으며…”라고 소개되고 있는바, 상황이 그러함에도 웃지 못 할 일이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지방자치가 온전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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