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중국 속의 한국’이라고 부르는 칭따오(靑島)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40대 중반의 한국인을 만났다. 그는 산동성 주청(諸城)시에서 공장을 갖고 있는 사업가인데, 중국 최대의 연휴인 국경절(10.1∼10.7)을 맞아 자전거로 칭따오에 여행 왔다고 했다. 제성과는 거리가 얼마냐 되느냐고 물으니 “여기서 130㎞쯤 떨어진 곳인데 자전거로 1시간 40분을 걸려서 왔다”고 대답하면서, 제성이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출생지라고 부연 설명해주었다.

같은 집에서 숙박을 하다 보니 중국에 관한 관심사를 물어볼 겸 또한 중국으로 기업을 옮겼던 사업가들이 옛날 호시절과는 달라서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이 많은 지금, 24년 동안 중국에서 사업해본 한국인의 체험담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짧은 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가 말하는 내용과 분위기에 대한 필자의 느낌은 현재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많은 사업자들의 공통적인 문제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정식 수교를 맺기 3년 전인 1989년에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고, 호황기와 불황기를 맞는 시기에 장춘으로, 대련으로 사업장을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산동성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는 것인데, 그 사실 자체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공장들의 경영이 어렵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건비의 상승이고, 베이징이나 칭다오 등 도시는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생산 단가를 맞출 수가 없다는 애로다.

또 하나는 중국이 예전과는 달리 한국 사업자에 대해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공장설립이나 취업 비자 관리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공장설립에 관한 까다로운 허가는 중국에 크게 도움이 되는 대규모 사업 등을 선호한다는 것이고, 취업 비자를 강화한 것은 과거와 같이 무분별하게 중국으로 들어와 중국인 일자리를 빼앗는 것을 예방하자는 것인데, 이는 중국이 근래에 국가 경제력 규모가 커지고, 중국인들이 더 잘 살게 된 이후부터 뚜렷한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반 이상을 중국에서 사업하면서 생활해왔지만 불만은 크다고 했다. 심지어 합리적이지 못한 면이 있는 중국이 더욱 부유해져 세계 경제대국이 되면 신흥국가나 우리나라에서도 우려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했다. 그 이유로는 어떤 나라든 경제적인 성장에 못지않게 사회·문화적으로 기본을 갖추고 난 뒤에 발전해야 정상적인데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거나 강대해지면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마 그동안 중국에서 겪은 희로애락의 체험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소회하는 것이라 여겨져 경청했다.

한국 사업가들이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중국의 값싼 인건비 때문인데, 지금은 농촌에서도 인건비가 만만치가 않아 공장이 자꾸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때 칭따오에서만 한국인이 경영했던 공장 수가 9천여 개가 됐지만, 지금은 베트남이나 내륙 농촌으로 들어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3천 개 정도 잔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지를 맞추려면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사업상의 스트레스는 받지만 여러 가지가 아직은 한국의 여건보다는 좋아서 한국으로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교감이 된 후에 “중국에서 24년간이나 살면서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현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비자 받기와 아이 의료보험이라 했다. 특히 중국정부가 올 7월 1일부터 비자법 강화로 인해 사업상 필수적인 비자 발급받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꼽았다. 그전에는 관광목적의 단기비자와 유학 및 사업을 위한 장기비자 두 가지뿐이었지만, 지금은 체류와 거류의 개념 구분을 명확히 하여 180일 이하 머무르면 체류, 181일 이상 머무르면 거주로 보기 때문에 체류비자로 181일 이상 거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기존의 F비자(방문)나 L비자(관광)를 가지고 중국내에서 거류하는 것은 불법 거류가 된다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지금은 단속이 된다는 이야기다. 또 과거에는 1개월 유효기간의 방문비자를 받은 사람이 사정이 생겼을 때에는 관련서류를 갖추어 중국내에서 비자 연장을 신청하면 3개월간 연장이 가능해졌는데, 신법이 시행되면서 중국 현지에서는 비자 연장이 불가능하므로 1개월 밖에 체류할 수 없어 한국인이 불편하다는 점을 토로했다.

비자 발급은 국가 간 상호주의에 따르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우리 정부는 이미 지난해 8월부터 중국인 관광객 유치활성화를 위한 시책으로 복수비자 대상을 확대하고, 그 기간도 3년 또는 5년 유효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 정부도 한국인에 대한 비자제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도록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 특히 朴정부 들어 한중관계가 좋은 시기에 영사 협력을 하루 빨리 매듭지어 한국인이 중국내 사업이나 여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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