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왜(倭)는 대륙으로 나아가는 데 길을 내라며 조선을 침략하니 7년 전쟁 임진왜란이다. 이순신 장군은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싸웠고, 한편으론 명나라의 도움으로 왜적을 몰아낼 수 있었다.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혼란을 틈타 북방 여진족은 힘을 키웠고, 드디어 후금을 세워 명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위험에 처한 명은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했으나 당시 임진왜란을 경험한 광해군은 이에 응하지 않고 대북파와 함께 명과 후금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중립 외교)로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며 실리를 쫓았다. 오늘날 사학자들이 광해를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대부분 만주족의 청이 한족의 명을 멸망시켰다고 생각하지만, 명의 숨통은 농민반란을 주도한 이자성(李自成)이 끊었다.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하자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는 매산(煤山)으로 올라가 자살했다. 시원찮은 황제였지만 반란군에게 치욕은 당하지는 않았다. 훗날 청왕조에 반항하던 한족은 그의 죽음을 대단한 것으로 묘사했다. 이자성은 국호를 순(順)로 정하고 칭제했다. 훗날 중국공산당은 이자성을 위대한 농민혁명가로 받들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북경 곳곳에 있던 대신들의 저택에 불을 지르고 창고에서 진
장순휘 청운대교수, 정치학박사, 문화안보연구원 이사 영화 ‘남한산성’은 시대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영화의 장르는 역사물로서 소재는 병자호란(1636.12.28~1637.2.24)으로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의 홍타이지가 명(明)을 정벌하기 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략했고, 인조의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으나 청군의 포위전술에 무조건 항복을 한 치욕의 패전이었다.이 전쟁은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전형적인 불법침략전쟁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오랑캐인 청에 대해 척화하는 것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독도를 비롯한 섬 때문에 동북아시아가 시끄럽다. 그러나 작은 섬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모문룡(毛文龍, ?~1629)은 지금의 항주인 인화(仁和) 출신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요동에서 근무했다. 1622년 1월, 요동이 후금에게 무너지자 해로로 돌아서 진강을 수비하던 적장을 죽이는 무공을 세웠지만, 오만한 성격 때문에 상관과 마찰이 잦았다. 왕화정의 추천으로 좌도독으로 승진하여 압록강 하구 피도(皮島)에 주둔했다. 피도는 명의 전략기지인 내주와 등주에서는 멀리 떨어진 황폐한 섬이었다. 남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