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어느 독일의 철학교수와 대학생은 학교 캠퍼스에서 대화를 나눴다. 내용인즉, 교수는 학생에게 왜 사느냐는 질문이었고, 학생 대답의 결론은 죽기 위해 산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그렇게 대답한 데는 누구나 다 나서 살다가 늙고 병들어 고생하다 죽는 것만 봤으니 자신 역시 그와 다를 게 없지 않겠냐는 의미였을 게다.

다시 말해 인간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 속에서 속절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전제 속에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정신(精神)이며 영(靈)이다. 그 생각과 정신과 사고와 인식이 그렇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의 생각이 결국 그 사람을 죽게 한 것이란 말도 된다.

그렇다면 그런 생각은 누가 준 것일까.

반면 위 학생과 다른 생각과 의식을 가진 인물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오백년 전 석가세존은 속절없이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 살기를 거부하고 인생에게 죽음은 왜 있게 됐으며, 사는 방법은 없는지, 우주만물을 창조한 조물주가 계신다면 죽게 하려고 인간을 창조한 것인지 등에 대한 궁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권세와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出家)를 했다.

위 학생과 석가세존의 차이는 뭘까.

학생은 이미 인류가 살아온 관성(慣性)에 의해 자신도 역시 세상의 종(從)이 됐고, 석가는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냐는 일념으로 신의 뜻을 찾아 나섰으니, 이 세상엔 이처럼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을 게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해야 한다.

생로병사의 해답을 찾기를 구해도 구할 수 없는 것은 답을 알 수 있는 때(時)가 안 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필자의 생각이 아닌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1)”라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그 증거다.

이 말씀이 참으로 진리가 아닌가.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목적은 추수에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씨를 심으면 자라나는 기간이 필요하고 기한이 차야 거두는 것이 이치듯이, 또 병을 고치기 위해선 원인을 알아야 처방을 내려 고칠 수 있듯이 말이다.

이같이 인류 최대 난제인 이 생로병사의 문제 또한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건이 충족돼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같이 생로병사의 원인과 사연과 때와 기한과 목적(예언)과 성취가 고스란히 기독교 성경 안에 예언과 성취 또는 배도 멸망 구원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노정과 순리와 함께 담겨 있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예부터 인류가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의 가치 있는 책을 성경이라 일컬어왔으며,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이 출간된 책이 성경(바이블)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이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서 죽어가는 인류를 해방시킬 묘책이 기록된 비밀문서 곧 계획서이자 언약서다.

따라서 이 책은 책장에 꽂아 놓기만 하는 장식품이나 교회 나갈 때 옆에 끼고 다니는 사치품이 아니라 누구나 반드시 읽고 담긴 뜻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틀림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거듭 말하지만 때가 되기 전엔 석가세존이 찾아도 다른 그 누가 찾아도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 자는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과 목적(사망을 멸하고 생명 곧 하나님이 통치하는 때)을 이룰 작정한 때가 되기 전엔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행 14:16)”는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처럼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한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0~31).”

그렇다. ‘이제’ 그 약속한 목적을 이루는 때가 되어 온 세상에 나타난 실체와 사실을 나팔 불어 알리고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을 위해 불고 있는 나팔소리의 핵심은 모두(冒頭)에 언급한 바와 같이, 생로병사 곧 사망을 이기고 구원과 영생이 찾아왔다는 생명의 소리인 것이다.

이는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믿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류는 놓여있다는 절박한 호소이자 절규인 것이다.

성경의 기록 목적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라고 기록됐듯이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뿐만이 아니라 조선이 낳은 유학자이자 천문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 선생은 이미 “태고이후(太古以後) 초락도(初樂道) 사말생초(死末生初) 신천지(新天地)”를 약속해 놨다면 이를 누가 거짓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분명히 할 게 또 있다.

이 영생은 죽어서 하는 영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는 말씀에서 영생의 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죽은 자의 부활과 산 자의 영생’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 하심같이, 산 영과 변화된 육체가 하나 되어 함께 천년 왕국이라는 영생의 소망에 들어가는 것임을 확인하라.

지금 신천지 총회장과 12지파장이 힘차게 또 아낌없이 불고 있는 마지막 나팔소리는 바로 이를 알리는 나팔 소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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