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에서

▲ 행전 박영환
울어 밤길 예놋는
강 가슴에 파묻혀
지새우는 밤하늘이
잠기고 또 잠길 때
어소(御所)의
여린 문풍지 얼마나 떨었을까

보았느냐
우리 님 흐르는 눈물을
들었느냐
폐부에 차오르는 흐느낌을
짓무른 사연을 안고
관음송(觀音松) 붉게 젖다

그리운 왕비여
만날 날이 언제일까

망향탑(望鄕塔)에 팔 뻗지만
허공 위에 쓰러지니
돌 하나 올리는 일도
천근으로
무거웠다

지난 일 그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두견새는 피눈물 흘리지만
모두 다 가슴에 묻어
말이 없는
장릉(莊陵)이여

*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을 추모하며

-약력-
경북 청도 출생
영남일보 신춘문예 (수필) 및 서정문학(시) 등단
수필집/ ‘안경을 왼손에 들고’, ‘솔바람 초록빛 바다’, ‘종소리의 뜨락에서’ 등 펴냄
교육신문 및 문학광장(수필), 작가시선(시) 수상
부산 모라중학교 교장 역임
현재 서정문학 부회장

-시평-
지존(至尊)께서 고개 넘을 때 눈이 내리고, 마을 지날 때 비가 내렸으리라, 먼 길 잠시 멈추고 다시 돌아갈 기약 없는 한양 땅을 향해 눈물지었으리라. 이 작품은 평이한 논리를 펴면서도 감동적인 울림이 있는 시로서 상(想)과 의(意)의 긴밀한 결합이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그 비극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안심과 오늘도 살아 있다는 즐거움과 이 험난한 현실에서 언제든지 내가 그 배역으로 지목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빠져든다. 어쩌면 이 시의 모습은 미움과 질투와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전개되는 인간과 자연과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생각게 하는 이 한 편의 시 속에 펼쳐진 슬픈 드라마는 누가 연출하는 것인가?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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