엷은 흔적

▲ 신화 오현월
이끼긴 장독대 앞
힘없는 여운이
추녀 끝에 걸려
거미줄에 엉키고
결리는 이별의 아픔
마당 곳곳에 솟았구나.

아버지 남겨두신
녹 슬은 무딘 연장
세월의 수치만큼
빨갛게 옷을 입고
줄 다름 치던 그 기교
기억마저 흐릿하여라


-약력-

서정문학 1기 신인상
서정문학 초대 기획실장
만해 한용운 시맥회 초대회장
공저: 언어의 사원을 꿈꾸며
시집: 달빛청사(교보문고 E-book)



-시평-

깊은 성찰의 자아탐구적 이미지가 강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흠뻑 배어있는 시다. 장년층의 아버지 특히 농촌에 사셨던 순박한 우리의 아버지는 시대의 역사, 삶의 역사였으나 사회의 중심에 서본 일이 드물다. 사회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치인, 재벌, 의사, 법조인 처럼 많이 배우고 재물 많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이 작품은 서로 다른 느낌의 장독대, 추녀, 거미줄, 마당, 연장, 세월, 기억 같은 시어가 전체를 떠받들어 한 편의 좋은 시를 탄생시켰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인의 마음속에 간직된 흐릿한 기억이다. 오현월 시인은 문학의 원칙을 잘 아는 시인이다. 그러나 사람과 자연이나 일상의 진리에 대한 지적 사유가 감성의 사유보다 깊은 탓인지 간혹 시가 무겁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시인의 개성이요, 필력일 것이다.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나면서도 꾸밈없는 인간미가 풍기는 한 편의 시 <엷은 흔적>이 예사롭지 않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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