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지지지지(至智知止)
[고전 속 정치이야기] 지지지지(至智知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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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올 한 해에는 검찰과 코로나19라는 말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정치와 무관한 두 가지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했다. 정치가들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고 떠들면서 그 둘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놓고, 사법부와 방역당국에 책임을 미룬다. 정치적 해결을 포기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부정적 기능만 남는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정치는 이상의 실현이다.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추상적 가치가 이상이다. 그러나 형이하학적 관점에서는 권력의 획득과 유지이다. 권력이 없이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민주주의, 절대주의, 대의주의와 같은 개념은 정치의 기능적 수단이다. 그것이 궁극적 목표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는 정치적 기술이 필요하다. 정치적 전략은 일단 권력의 획득을 위해 추상적 가치를 목표로 삼고, 기능적 수단을 전술적 계획에 따라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정치는 경제에 집중돼 나타난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정치적 목적은 일정한 사회적 집단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를 가리키며, 그들이 기대하는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면 전략이 아니다.

제왕은 자기의 통치력을 다져서 권력을 만세에 전하려고 했다. 권모술수에 능한 군주는 정국을 마음대로 운용했다. 겉으로는 자기의 속셈을 감추고 신하들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지만, 속으로는 혹시나 일어날 사고에 미리 대비했다. 이런 군주는 속셈은 감추지만 정치적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치도에 밝은 군주는 전체적인 정국을 조용히 관찰하면서 일부러 일을 만들지 않는다. 이런 군주는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표정을 살핀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친밀한 측근을 활용해 모든 정보를 캐낸다. 용인술에 능한 군주는 겸손한 태도로 정적까지 포용했다. 그러나 앞잡이를 내세워 몰래 문제가 있는 신하를 제거했다. 때로는 권력과 부귀를 누리는 신하를 견제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신인을 기용해 권력을 빼앗는 경우도 있다. 한비자에서는 군주가 권력의 자루를 신하에게 넘기는 순간 위험해진다고 경계했다. 어떤 야심가가 자기는 형벌을 담당해 악역을 맡을 것이니, 군주께서는 포상을 전담해 성군이 되라고 권했다. 그 결과 권력의 자루는 야심가에 넘어갔다.

신하에게 정치적 목적은 기득권의 유지와 확대이다. 야심가는 지조를 꺾더라도 실익을 선택한다. 그는 누구에게도 싫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몰래 상대를 공격한다. 느긋한 태도로 권력에 초연한 것 같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기회가 오면 신출귀몰하고 불가사의한 수단으로 권력을 탈취한다. 그에게는 군주까지도 사실상의 정적이다. 아류들은 현실의 유지가 목적이다. 그들은 감언이설을 늘어놓거나 뇌물로 상대의 이목을 가린다. 기꺼이 권세가에게 빌붙거나 납작 엎드려 눈치만 살핀다. 그들에게 정치는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생존의 기반이다. 겉으로라도 공익을 추구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생계형 정치가들과 영혼을 빼앗긴 공무원들이 보여주는 행태이다.

그러나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도 있다. 입신양명이 자신과 가족까지 위험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경우이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제동장치가 있다. 어느 정도에 이르면 경고장치가 가동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멈출 줄을 안다. 대학에서는 그것을 지지(知止)라고 했다. 위험신호가 오면 과감하게 용퇴한다. 용퇴가 불가능하면 스스로 작은 오명을 뒤집어써서 자신을 깎아 내린다. 전제정치제도에서는 입신보다 은퇴가 더 위험했다. 자기만 고고한 척하다가는 동류들의 모함에 걸려든다. 부귀공명에서의 은퇴에는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수순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미치광이 노릇을 했을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신을 감춘다는 것은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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