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춘추전국 교체기 사회적 비판은 제자백가가 일으킨 사학사조의 기본적 태도였다. 공자, 노자, 묵자는 각자 다른 계급의 사상을 대표했지만, 모두 당시 사회의 양극화된 현상을 이지적인 시각으로 폭로하고 비판했다. 그 가운데 하층 노동자의 대표로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직접 경험한 묵자의 비판이 가장 매서웠다. 심각한 양극화는 그의 본능을 자극해 분노로 표출됐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는 보수적이고 개량주의적으로 변질됐다. 애매한 변질은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자의 역량을 분산시켰다. 그는 정치구조나 제도개혁보다 성인이나 현군이라는 개인의 도덕성에 의지하려고 했다. 온건개량주의는 통치계급의 온정과 지혜에 희망을 건다는 의미였다.

묵자의 온건개량주의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다른 계급의 이익이 겸애(兼愛)와 교리(交利)로 조화될 수 있다는 낭만적 성격이다. ‘흥천하지리(興天下之利), 제천하지해(除天下之害)’는 보편적 의미라기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통치계급의 특권과 이익을 삭탈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이런 관념은 계급적 특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다. 산업혁명 이후 성장한 유럽 노동자도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형성하며 이익을 추구했다. 온건파인 조합주의자는 정치권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이익을 공유하려고 했지만 공상적 사회주의자라는 조롱을 받았다. 사회주의자들은 의회로 진출해 기존체제에서 이익을 추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와 온건한 생디칼리즘을 싸잡아 비난하고, 전제주의와 귀족의 권력은 폭력으로 타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묵자는 통치계급의 행태를 격렬하게 비판했지만, 정치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는 온건주의로 후퇴했다. 특권층에게 온정을 기대하는 것은 혁명가가 아니라 구걸에 기대는 거지근성에 불과하다.

둘째, 혈연적 종법제도에 의한 계급질서를 거부하고 대동사회를 추구했다. 그의 꿈은 사회적 준칙이라는 보편적 약속이 구속력을 가지는 사회의 실현이었다. 모두 겸겸군자가 될 수 있다면 겸애와 교리가 실현된 대동사회도 새로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의 땅을 실현하려던 그의 꿈은 요원했다. 사람들은 미래의 유토피아보다 당장의 풍요와 안락이 더 다급했다. 사람들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은 묵자의 이상사회를 믿지 않았다. 오랜 계급사회의 압박에 시달린 사람들은 굴종과 포기로 얻을 수 있는 작은 안락이 현실적이었다. 모든 혁명가가 이상을 제시하지만, 대중은 그것을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았다. 성왕은 후대의 조작에 불과했다. 묵자도 이러한 조작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상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묵자의 위대함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의무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류는 이상주의자의 꿈을 먹고 산다. 이상주의자가 없는 사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셋째, 묵자의 금욕주의는 노동자에게도 해당됐다. 그는 노동자도 생존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라고 가르쳤다. 물질적 이익의 극대화는 그가 추구한 생산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통치계급에게는 생산노동자로부터 수탈의 정도를 줄이라는 요구였으며, 생산노동자에게는 지나친 소비를 하지 말라는 권고였다. 사회적 재화를 창조하는 주체인 노동자는 이중적인 속성을 지녔다. 하나는 빈부의 양극화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고, 다른 하나는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자족감이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꿈꿀 뿐이다. 초기 우리의 노동운동에서도 대부분 저학력자였던 현장노동자는 자체적 노동의식을 갖추지 못했고, 고학력자들이 위장취업을 했을 때 비로소 조직적 역량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드러나면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들의 경력이 권력으로 바뀔 때 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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