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삼국지] 채옹의 통곡 1
[다시 읽는 삼국지] 채옹의 통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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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윤 소설가

 

왕윤의 계획대로 도성으로 들어간 동탁은 여포와 이숙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목이 잘린 그의 시체는 저자거리에서 짓밟혀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왕윤의 명을 받은 여포는 군사 5만을 거느리고 미오로 달려가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이각, 곽사, 장제, 번조는 군사를 몰아 양주로 달아났다.

여포는 미오에 도착하자 단걸음에 초선에게 달려가 덥석 껴안았다. 그는 평생 소원을 풀게 됐다.

황보숭과 이숙은 미오에 징발돼 온 양가(良家)의 여자들을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한 뒤 동탁의 친속은 노유를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죽여 버리니 동탁의 늙은 어미도 죽음을 면할 수 없었고, 동탁의 아우 동민과 조카 동황도 참수를 당했다.

탁의 재산을 적몰하니 황금이 수십만 근이요 백금이 수백만 근이었다. 그 밖에 명주와 비단과 보석이며 기명(器皿)과 양식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모두 다 백성들의 피요 기름이요 살을 긁어모은 것들이었다.

미오에 간 장수들이 돌아와 왕윤에게 결과를 보고하니 왕윤은 크게 군사들을 호궤하고 잔치를 도당에 베풀어 모든 관원과 축하하는 술잔을 들었다.

한참 즐겁게 술을 마시는 판인데 수직하는 군사가 급히 들어와 보고를 했다. “동탁의 시체를 저자에 버렸는데 어떤 사람이 시체 앞에 엎드려 구슬피 방성대곡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괴상한 일이라 생각했다. 왕윤은 크게 노해 꾸짖었다.

“역적 동탁이 복주가 된 후에 천하의 선비와 백성들은 하례하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어떤 놈이 감히 역적을 조상해 곡을 한단 말이냐. 당장 그 자를 잡아들여라!”

무사들이 영을 받고 나간 뒤에 얼마 되지 아니하여 조관(朝官) 하나를 잡아 왔다.

모든 관원들은 잡혀 들어오는 관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시중 벼슬을 한 채옹이었다. 채옹은 천하 무장으로 일세의 당당한 명사였다. 원로대신인 왕윤은 잡혀 들어오는 인물이 채옹인 것을 알자 노여움이 한층 더 높았다. 그는 뜰아래 꿇은 채옹에게 큰 소리로 꾸짖었다. “역적 동탁이 모든 뜻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주가 된 일은 국가의 경사다. 온 나라 백성들이 그 경사를 칭송을 하는데 유독 너는 역적을 위해 조상하는 곡을 했으니 너는 한(漢)의 신하가 아니냐?”

채옹은 뜰아래 꿇은 채 사죄를 했다.

“옹이 비록 불민하오나 글을 배워서 대의를 알고 있습니다. 당당한 한나라 신하로서 어찌 나라를 배반하고 동탁을 두둔하겠습니까. 그러하오나 공은 공이오, 사는 사올시다. 동탁은 일찍 저의 재주를 알아주었습니다. 비록 국가에 대해서는 역적이지만 저 개인에 대해서는 지우(知遇)라 할 것입니다. 사사로운 정을 이기지 못해 한 번 울어 그의 가련한 죽음을 조상한 것뿐입니다. 스스로 죄가 큰 것을 인정합니다. 원컨대 사도께서는 저를 극형에 처하신 후에 다행히 목숨을 부지해 주신다면 여태껏 써 오던 한사(漢史)를 계속 탈고해서 속죄를 하게 된다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채옹의 재주를 아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태부 마일제가 조용히 왕윤에게 말했다. “채백개는 몇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일재(逸才)올시다. 만약 그로 하여금 한사를 속성시킨다면 참으로 성사라 하겠습니다. 또 그는 효행이 세상에 드러난 효자의 이름이 높은 사람입니다. 만약 갑자기 죽어 버린다면 인망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왕윤은 마일제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옛적에 효무제(孝武帝)는 사마천을 죽이지 아니하고 사기(史記)를 짓게 했더니 그 뒤에 사기를 쓸 때 비방하는 글을 써서 후세에 유전(流傳)을 시켜놓았소. 지금 나라의 운수가 쇠미하고 조정이 어지러운 이때 간사한 신하가 어린 임금 곁에서 사관 노릇을 한다면 후세에 우리가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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