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이 초선을 데리고 미오 별장으로 떠나자 여포는 슬픔에 잠겼다. 왕윤은 그런 여포를 위로해 집으로 함께 돌아가 그를 자극시켰다. 여포는 분연히 일어나 동탁을 죽이겠다고 다짐을 했다. 왕윤은 복야사 손서와 교위 황완을 불러 상의하자 동탁을 대궐로 불러들여 여포에게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동탁을 처치하자고 했다.

왕윤은 동탁을 불러오게 보낼 마땅한 사람을 묻자 손서가 대답했다. “여포와 고향이 같은 기도위 이숙은 본시 동탁의 심복이었으나 요사이 동탁이 벼슬을 높여 주지 않으니 이숙은 항상 불만이 많았소. 그러나 아직 동탁은 이숙의 마음을 모르고 있소. 이 사람을 보내서 황제께서 동탁을 부르신다고 하면 그는 의심치 않고 움직이리라 생각하오.”

왕윤은 손서의 말에 여포를 불러 상의하기로 하고 사람을 보냈다.

이윽고 여포가 달려와 이숙을 동탁에게 보내자고 하자 그는 팔뚝을 걷어붙였다. “나 역시 그 계교에 찬성하오. 지난날 내가 정건양을 죽이고 동탁한테 소개한 사람이 바로 이숙이오. 만약 이숙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내가 먼저 이숙의 목을 베겠소이다.”

그 자리의 사람들은 모두 의견 일치를 보았고, 왕윤은 조용히 이숙을 청했다. 이숙은 사도 왕윤이 무슨 일로 부르나 싶어 왔더니 그곳에는 벌써 손서, 황완과 여포마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공은 나를 달래어 정건양을 죽이고 동탁과 함께 손을 잡고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오. 그러나 지금 동탁은 위로 천자를 속이고 아래로 백성을 학대해 죄가 하늘에 뻗쳤소. 그야말로 하늘과 백성이 다 함께 분개하지 않을 수 없소. 우리들은 지금 동탁을 죽여서 사직을 바로잡을 것을 의논하고 있는 중이오. 공은 천자의 조서를 받들고 미오로 가서 동탁을 입조하라 하시오. 그 기회를 타서 우리는 복병으로 동탁을 죽일 작정이오. 어떠시오. 함께 힘을 합해 충신의 길을 택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여포의 말이 끝나자 이숙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나 역시 이 역적 놈을 제거해 버리고 싶은 지 오래 됐소이다. 그러나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없어 한이었소. 이제 장군께서 이 같은 일을 하신다며 이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이 이숙이 어찌 두 맘을 먹겠습니까?”

말을 마친 이숙은 등에 매고 있던 전통에서 화살을 뽑아 딱 분질러 맹세를 하자 옆에 있던 왕윤이 한마디 했다. “공이 만약 이 일을 주관해서 성공이 되기만 한다면 중흥 공신이 될 것입니다. 그까짓 보통 벼슬 따위는 문제도 아닙니다.”

왕윤은 이숙에게 득을 따져 그를 부추겼다.

다음 날이 됐다. 이숙은 수십 기를 거느리고 미오로 가서 먼저 천자께서 조서를 내렸다고 알렸다. 동탁은 조서를 내렸다는 말을 듣자 이숙을 불러들였다. 동탁은 거만하게 앉아서 이숙의 절을 받았다. 천자가 무슨 조서를 내렸느냐고 동탁이 물었다. 이숙은 소매 속에서 조서를 꺼내 동탁에게 내밀었다.

조서는 간단했다.

- 태사와 긴급히 상의할 국사가 있으니 시각을 지체 말고 급히 입궁하라.-

황제의 옥새까지 찍혀 있었다. 분명한 천자의 조서였다.

“참말, 축복합니다. 천자께서는 이제야 대위(大位)를 태사께 선위하시려는 의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병환이 계셨는데 요사이 차도가 계신 듯합니다. 문무백관들을 중앙전에 모이라 하시고 그 일을 결정하신다 합니다.”

동탁은 대신 중에 사도 왕윤을 가장 꺼려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동정이 어찌 될지 궁금했다.

“왕윤의 의향은 어떠하다고 하더냐?”

“왕 사도께서도 크게 환영하는 눈치였습니다. 수선대까지 마련하고 주공의 입조하시기만 고대하고 있습니다.”

동탁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허허. 내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용 한 마리가 몸에 감기더니 오늘 이 같은 기쁜 소식을 듣는구나. 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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