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일석다조(一石多鳥)
[고전 속 정치이야기] 일석다조(一石多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북송 초기에 남쪽에는 아직도 남당이라는 정권이 버티고 있었다. 송군은 각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 적을 이용해 군심을 동요시켜 반항의지를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관망하는 사람들은 송에 투항하려고 했다. 남당 정권에서 관천(管泉)과 남(南)이라는 2개의 주를 장악한 청원군절도부사 진홍진(陳洪進)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3단계에 걸친 그의 양다리 걸치기는 절묘했다. 송태조 건륭원년(963), 남당은 청원에 절도사 장한사(張漢思)를 주둔시켰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정무나 군무를 처리하지 못했으므로, 대부분의 중요한 일은 부사 진홍진이 처리했다. 장한사는 그가 권력을 휘두르자 두려움을 느끼고, 잔치를 열어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암살하려고 했다. 주연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마침 지진이 크게 일어나자 함께 모의를 꾸몄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누군가 진홍진에게 음모의 전말을 일러주었다. 진홍진은 즉시 매복한 군사들을 전부 흩어버렸다. 장한사는 계속 진홍진을 경계했다. 이것이 1단계였다.

4월 22일, 진홍진은 소매에 커다란 자물쇠를 감추고, 그 위에 평상복을 걸친 채 느긋한 자세로 군부로 들어갔다. 그는 숙직하던 군사들을 물리치는 동안 장한사는 내실에 있었다. 진홍진은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장한사를 위협했다.

“장군과 관리들은 당신이 나이가 너무 많고 정신이 혼미하니 저에게 뒷일을 맡기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거스르지는 못합니다. 저에게 대인을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장한사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놀라서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대인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진홍진은 즉시 장군들을 불러서 장한사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고 자기에게 대인을 넘겨주었다고 선언했다. 장군과 관리들은 모두 축하했다. 장한사는 은퇴했다가 몇 년 후에 병사했다. 장한사를 속여서 대인을 빼앗은 날, 진홍진은 그를 바깥에 있는 별채로 옮기고 군사들에게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동시에 사자를 남당으로 자신을 절도사로 임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남당의 군주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이 2단계였다.

진홍진은 남당에 사신을 파견해 군주를 속이고 절도사가 됐다. 이어서 아장 위인제(魏仁濟)에게 몰래 표를 주어 송에 파견했다. 전후의 사정을 자세히 보고하고, 송태조가 직접 자신에게 관직을 내린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8월, 진홍진은 송에 조공을 함으로써 귀순해 충성하겠다고 맹서했다. 10월 30일, 진홍진이 파견한 아장 위인제가 송에 도착했다. 진홍진은 스스로 청원군정도부사라 칭하고 임시로 관천과 남 등의 2개주를 관장하고 있으니, 송조정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했다. 송태조 조광윤은 통사사인 왕반(王班)에게 조서를 주어 그를 위로하고 효유했다. 11월 9일, 조광윤은 남당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 구체적으로 진홍진을 받아들인 본의를 설명하고 절도사로 임명하겠다고 통보했다. 이것이 3단계이다.

인장을 빼앗은 후 군대를 장악한 진홍진은 군주를 속여서 봉작과 상을 받고, 동시에 새로운 주군에게 표를 올려서 관직을 얻었다. 그가 군대를 장악하자 영토를 잃을까 걱정이 된 남당의 후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군주 조광윤도 군사력을 장악한 그를 경시할 수 없었다. 인장을 빼앗아 남당의 군주를 속였지만, 송대 초기 지방의 군사지도자로 부상되자 송과 남당이라는 기존 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할 위험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당과 송의 약점을 이용한 양다리 걸치기로 일석다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중국인들은 속임수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속인 자는 지혜롭고, 속은 자는 어리석다고 생각할 뿐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을 보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