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망국지군(亡國之君)
[고전 속 정치이야기] 망국지군(亡國之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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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이연이 당을 건국하고 천하를 통일했을 때, 호북성 강릉에는 양왕(梁王)을 자칭한 소선(蕭銑)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621년 9월, 이연은 파촉일대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종실인 이효공(李孝恭)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최고의 명장 이정(李靖)이 행군장사대리로 12명의 총관을 지휘하여 장강을 따라 동진할 예정이었다. 마침 강물이 불어나자 대부분 진군을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정은 오히려 물의 흐름을 이용하면 기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효공도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 당군은 재빨리 이릉(夷陵)을 거쳐 소선의 장군 문사홍(文士弘)을 격파하고 백리주(百里洲)까지 진출했다. 소선은 수 천의 경호부대만 남기고 모든 군대에 농사일을 맡기고 있었다. 놀란 그가 급히 군대를 소집했지만 분산된 병력을 모으지는 쉽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보유한 병력만 이끌고 당군을 막았다. 이효공이 싸우려고 하자, 이정은 공격을 늦추어 적을 분산시킨 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공명심이 앞선 이효공은 정예부대를 이끌고 출전했으나 실패하고 장강 남안으로 후퇴했다. 소선의 부대는 당군이 남기고 간 선박과 군수물자를 챙기느라고 혼란에 빠졌다. 이정이 곧바로 반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강릉까지 추격했다. 이정은 포획한 선박을 모두 장강에 흘려보내자고 건의했다. 다른 장수들은 적이 사용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이정은 대답했다.

“소선의 기반은 동남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고립된다. 협공을 받으면 마음대로 진퇴할 수 없으니 선박이 무슨 소용인가? 선박을 흘려보내면 적은 강릉이 함락되었다고 생각하여 감히 진격하지 못할 것이다. 적이 보름 정도만 행동을 지체하면, 아군은 승리할 수가 있다.”

과연 소선의 구원병들은 자기편의 선박이 장강으로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항복했다. 포위된 소선은 잠문본(岑文本)에게 대책을 물었다. 잠문본이 투항을 권유하자, 소선이 말했다.

“기둥이 없는데 어디에 지탱하겠는가? 버티면 백성들만 고생한다. 나 하나를 위하여 아무 죄도 없는 백성들을 괴롭혀서야 되겠는가?”

소선은 태묘에 고하고 항복했다. 성을 지키던 모든 사람들이 통곡했다.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히고 당군의 군영으로 온 소선이 말했다.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소선 한 사람입니다. 백성들은 죄가 없으니 용서하시오.”

이효공은 군사들에게 약탈을 허용하려고 했다. 잠문본이 애걸했다.

“강남의 백성들은 수말부터 학정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군웅들의 전쟁으로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현명한 군주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약탈을 방치하면 강릉의 남쪽 광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효공은 약탈금지령을 내렸다. 제장들은 이렇게 건의했다. 강릉은 빨리 안정되어 작은 범죄도 발생하지 않았다. 남방의 각 주현도 소식을 듣고 대부분 귀순했다. 며칠만에 원군이 도착했지만, 소선이 항복한 사실을 알고 모두 투항했다. 이정은 최소의 정치적, 군사적 대가를 치르고 심리전으로 승리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넓은 지역을 평정하느라고 상당한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소인이 장안으로 송치되자, 이연이 그의 죄과를 꾸짖었다. 소선이 말했다.

“수왕조는 잔혹한 통치 때문에 천하를 잃었고, 천하의 호걸들이 다투어 군사를 일으켜 서로 싸웠습니다. 저 소선은 하늘의 뜻을 받지 못해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죄가 있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는 공개처형 되었다. 소선은 대단한 정치적 식견을 지녔으며, 끝까지 군주로서의 품위를 지켰다. 이연이 대당제국의 군주로서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러한 그의 정치적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망국의 군주라고 모두 무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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