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단비구법(斷臂求法)
[고전 속 정치이야기] 단비구법(斷臂求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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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남인도 찰제종(刹帝種)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인 보리달마(菩提達磨 Bodhidharma)는 양(梁)의 보통(普通)원년(520) 중국 남부해안도시인 광주(廣州)로 건너와 선종(禪宗)의 시조가 됐다. 나중에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로 옮긴 그는 종일 벽관을 하며 수도에 전념했다. 향산(香山)으로 출가해 보정(寶靜)선사의 가르침을 받고, 영목사(永穆寺)에서 구족계를 받은 신광(神光)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유가와 불교를 통섭했다. 32세에 다시 향산으로 돌아와 8년 동안 좌선을 끝낸 후, 북위 효명제 정광(正光)원년(520), 달마를 찾아갔다. 마침 엄청난 눈이 내렸다.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나 한마디 말도 듣지 못한 그는 밤을 꼬박 새운 후에 왼쪽 팔을 잘라서 자신의 굳은 뜻을 보여줬다. 배움에 대한 갈망을 안 달마는 그를 제자로 삼았다. 훗날 달마의 의발을 전수받고 선종의 2대법통을 이어받은 신광은 법명을 혜가(慧可)로 고쳤다. 단비구법 즉 팔을 잘라 불법을 구했다는 유명한 실화이다.

그 외에도 스승을 찾아갔다가 몇 년 동안 고된 일을 하다가 간신히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고대의 스승들은 함부로 제자를 두지 않았다. 돈을 받고 학문을 판매하는 현대식 대중교육관과는 판이했다. 옛 스승들이 제자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자질과 공부에 대한 열성이었다. 두 가지가 겸비되지 않으면 충분한 교육효과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오래 전 속리산 자락에서 은거하던 스승을 모시고 침구술을 배웠다. 제자라고는 앞을 보지 못하는 청년 한 사람과 심한 소아마비를 앓아서 걷지 못하는 처녀 한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필자에게 3가지 약속을 하라고 하셨다. 첫째, 언제든 내쫓으면 군소리하지 말고 나갈 것, 둘째, 치료하더라도 절대로 돈을 받지 말 것, 셋째는 누구에게 배웠다는 말을 하지 말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침구술보다 거처할 곳이 없었으므로 기꺼이 수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생께서는 수업료를 받지 않았으니 당신 마음대로라고 하셨다.

이미 고인이 되신 선생과의 약속 가운데 첫째는 1년을 채운 후 쫓겨났으므로 저절로 지켰고, 둘째는 지금도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셋째 약속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절반은 어기고 있다. 대중교육 또는 국민교육이 가능해진 것은 교육받은 인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급격한 증대와 민주화 때문일 것이지만, 교육의 내용이 체화될 때까지를 목표로 삼았던 고대교육과 박제화된 지식을 관념적으로 익히는 현대교육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성기 공자의 제자는 지금의 어지간한 학교보다 많았다. 논어를 보면 ‘인(仁)’이라는 하나의 추상적 개념을 설명한 내용만도 수 십 가지가 넘는다. 학생의 자질과 수준에 맞춘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또 고대의 스승은 혼자서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친다. 유명한 학자들도 여러 분의 스승을 모셨다는 기록이 별로 없다. 기능이나 기술 또는 지식을 익히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분리된 전문지식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지혜를 쌓아야 했기 때문에 스스로 최선을 다해 궁구하다가 반드시 물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스승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그러므로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서 스승이 주도적으로 강의를 하는 학습방법과는 달랐다. 제자가 스승을 믿지 않으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었던 교육이었다.

역경의 64괘 가운데 4번째인 산수몽괘(山水蒙卦)에는 주역의 교육사상이 집약돼 있다. 둔괘가 신생아가 겪는 어려움이라면, 몽괘는 둔괘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다. 둔괘에서 벗어나 형통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 몽괘의 교육관은 현대의 교육과 다르다. 현대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수단으로 삼지만, 몽괘에서는 교육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육자가 피교육자를 찾아가는 방법은 옳지 않으므로, 스스로 찾아오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대중교육만으로 인재를 기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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