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중 우리는 다자간 협상이란 대목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것이 북한 비핵화의 국제적 공조냐는 긍정적 해석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북한 ICBM, 즉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중국으로 반출한다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이 당과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며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을 바로 덧붙였다. 

자세히 보면 여기 함정이 있다.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는 말만 하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10~30개로 추정되는 핵탄두와 한국과 미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의 폐기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슬쩍 넘어갔다. 이것은 트럼프가 대북제재를 강화한 결과 북한이 핵실험도 안 하고 미사일도 발사하지 않았다고 자랑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트럼프가 자랑한 핵미사일의 동결이다. 그러나 한국이 요구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 핵의 완전한 폐기다.

완전한 폐기라는 것은 충분히 검증되고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폐기를 의미한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는 현재의 상황과 입장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타개해 완전한 비핵화를 하는 것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목적이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의 톤과 내용으로 보아 협상이 가시밭길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내건 조건이 장황하다. 그가 미국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에 대한 어떤 상응조치인가?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공장을 폐쇄한 것을 북한이 취한 선제적 조치로 내세우고 거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한다. 김정은은 동시에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중단하고 외부의 전략자산과 전쟁장비의 전개와 도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전략자산에는 핵우산도 포함된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의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현 상태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는 무엇을 말하는가? 외부 전문가의 참관과 검증 없이 실행된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과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공장 폐쇄는 미국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북한이 제시할 핵무기 목록을 대조·검증한 뒤 핵무기·물질의 일부를 반출해 해체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체 핵전력의 20%가 되든 80%가 되든 불가역적인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100% 비핵화가 아니라도 일단 제재를 일부 완화한 뒤 나머지 핵무기의 완전폐기를 협상한다는 것이 미국이 그리는 그림이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과장법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협상이 잘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칭찬에 흔들리지 않고 요구할 것을 모두 요구하고 있다. 그는 신년사에서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돼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이렇게 못을 박았다. 그리고 연초 워싱턴을 방문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재확인 시켜주었다. 그러나 겨우 핵무기 운반수단인 ICBM 일부만을 중국으로 내보내고 그것을 ‘비핵화의 연출’로 확대하려 한다면 북한은 크게 오산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