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의 조성길 대사대리 부부가 지난해 11월 공관을 이탈해 잠적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제3국 망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 대사대리를 비롯한 끊이지 않는 탈북 행렬은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당한 고위층들은 벌써 김정은 체제를 일종의 ‘난파선’으로 여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특히나 외교관처럼 외부세계를 경험한 엘리트층이 느꼈을 절망감과 자괴감 이상의 탈북 사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외교부는 최근 북측으로부터 조 대사대리의 교체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결국 본국 귀환을 앞둔 조 대사대리로서는 질식할 것 같은 폐쇄사회로 다시 돌아가느니 목숨을 건 망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성길 대사대리는 부친과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고위층 집안 출신으로 북한 고위층을 위한 사치품 조달 책임자였다고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전한다. 북한 외교관은 사실상 외화벌이 일꾼이나 다름없다. 특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날이 갈수록 강화되면서 북한 당국은 더욱 외교관들을 외화벌이나 밀수 같은 불법행위로 내몰고 있다. 그 실적에 따른 본국의 추궁과 소환 압박은 이들의 이탈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조 대사대리도 북한대사 추방 등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한 이탈리아에 근무하면서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지구상 가장 폐쇄적인 독재체제로부터의 탈출은 정권이 아무리 기를 쓰고 막으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개방적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한 극복할 수 없다. 물론 개방에 따른 체제이완과 부작용도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감시를 강화하고 국경을 틀어막아 억압체제를 강화할수록 내부 붕괴의 시한폭탄만 키울 뿐이다. 비핵화를 서둘러 국제사회의 지원 아래 충격을 완화하는 것 외에 김정은 정권이 살 길은 꽉 막혀 있다.

고위 외교관의 선배인 태영호 전 공사는 조성길 대사대리에게 대한민국으로 망명할 것을 강력히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태 전 공사는 5일 자신의 블로그에 ‘북한 외교관들에게 대한민국으로 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제목으로 “나의 친구 조성길에게!”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태 전 공사는 “성길아, 너와 직접 연락할 방도가 없어 네가 자주 열람하던 나의 블로그에 너에게 보내는 장편의 편지를 올린다”며 “자네 가족이 이탈리아에서 잠적했다는 보도가 나온 날부터 우리 가족은 아침에 일어나면 인터넷에 들어가 자네 가족 소식부터 알아본다”고 전했다. 

그는 조 대사대리와의 지난날 추억을 회상하며 “애들도 ‘성길 아저씨네 가족이 서울로 오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보도를 보니 자네가 미국망명을 타진하고 있다니, 이게 웬 말인가?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탄식했다. 이어 “북한 외교관으로서 나나 자네가 남은 여생에 할 일이란 빨리 나라를 통일시켜 통일된 강토를 우리 자식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아니겠냐”며 “서울에서 나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우리가 몸담았던 북한의 기득권층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를 통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조 대사대리가 한국으로 망명한다면 철저한 신변 보호는 물론, 주거, 직업, 자녀교육 등 모든 것이 보장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민족의 한 구성원이며 북한 외교관이였던 나나 자네에게 있어서 한국으로 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며 “서울에서 자네를 기다리겠다! 상봉의 그날을 고대한다”고 글을 맺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우리가 배운 애국주의에는 우리 민족의 미래나 번영은 없고 오직 김씨 가문을 위한 총폭탄정신 이였네. 나는 50대에 이르러서야 내가 평생 바라던 진정한 애국주의는 바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나의 조국도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 우리의 조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지금 자네도 선뜻 마음에 와 닿지는 않을 걸세.” 이 정도면 태영호 전 공사의 설명은 충분하다. 그리고 답은 나와 있다.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장승길 전 이집트 대사와 김정은 위원장의 이모 고용숙 씨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사실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은둔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조성길 대리 대사여! 서울은 당신들을 품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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