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 위원장이 압록강대교를 건너 베트남 방문의 장도에 오른 것으로 보도됐다. 이와 같은 사실은 베트남 당국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식 방문’이 예정돼 있음을 23일 공식 발표하면서 공식화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은 앞서 ‘국빈 방문(state visit)’으로 예상됐으나 일단 2차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베트남 방문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공식 방문(official visit)’으로 진행하게 됐다. 이는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베트남 당국과의 교류협력보다는 북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부보다 먼저 비핵화의 중대 과제를 풀어야 하는 북한 정권의 고뇌가 담신 결정으로 보인다.

또한 베트남 당국의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에게 국빈 방문에 해당하는 의전을 제공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 대우를 해야 하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도 보인다. 국빈 방문은 의전상 방문 대상국이 모든 경비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최상급 의전으로 분류된다. 다만 공식 방문도 국가 정상급 인사에게 제공되는 것으로 결코 격이 낮지는 않다. 다만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갖는 상징성을 고려해 베트남 당국이 실질적으로는 북미 정상 모두에게 국빈급 예우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르면 25일, 늦어도 26일에는 하노이에 입성할 것으로 보이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국을 앞두고 베트남 당국이 예상 입국 루트 및 동선에 대해 ‘완벽한’ 경호를 준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다시 공식적으로 ‘국빈’ 자격으로 베트남에서 추가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지난 1958년 김일성 주석의 국빈방문을 재현함으로써 베트남식 경제발전을 도입하려는 의지와 베트남 모델 선호를 세계에 알리려는 두 가지 목적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한가로운 대장정을 보며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를 읽을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이미 비핵화의 시간표를 미국의 대선퍼즐에 맞춰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하노이에서는 사흘째 합의문 작성을 위한 실무협상이 한창이다. 협상단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가로운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감지할 수 있다. 우선, 북한 김혁철 대표는 미사일 사정거리를 줄줄 외우는 핵 전문가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한 뉴페이스 김혁철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뢰하는 인물이고, 통역 없이도 영어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노련한 외교관이다.

북미 대화의 여성 스타 김성혜 통전부 실장은 협상 중에도 숙소를 수차례 오가며 평양에 보고를 하고 훈령도 받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박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일했던 ‘미국통’이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을 찾은 김영철 부위원장 바로 옆에 앉았고, 김 위원장에 방미 결과도 함께 보고했다. 미국 측 스티븐 비건 대표는 포드자동차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만큼, 실제 협상의 달인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 의회 등에 네트워크가 많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권한을 위임받은 것으로 보이는 ‘관록맨’이다. 또한 앨릭스 웡 부차관보는 법률전문가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논의의 법률 자문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1차 정상회담 때부터 실무협상을 해온 최강일 북미국장대행과 앨리슨 후커 보좌관이 각각 이들을 수행하고 있다. 실무진들이 논의하는 내용 중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해체에 대한 검증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이 외부전문가를 불러 앞서 진행된 비핵화 조치를 검증하고, 그 과정을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북한 비핵화가 미국의 차기 대선퍼즐에 맞춰졌다면 이야말로 ‘환상적인 궁합’이 되겠지만 과연 북한이 그동안 개혁과 개방이란 대세에 편승할지 그것이 궁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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