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철학적으로 볼 때, 오늘 점심은 짜장면으로 할까, 짬뽕으로 할까는 ‘사유’라고 할 수 없다.  한 끼 식사를 어떤 종류로 할까라는 것은 사유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짜장면과 짬뽕을 선택하는 데 깊은 사유가 필요하지 않고, 고뇌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다만 어느 사물을 취할 것인가 하는 단순한 뇌의 작용일 뿐이다. 사유(思惟)는 사물에 대해 구별하고, 생각하고, 살피고, 추리하고, 헤아리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유론으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다.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인간, 만족하는 바보와 불만족하는 소크라테스, 이러한 명제는 모두 ‘사유’가 기준이고 핵심이다. 배부른 돼지는 아무런 사유도 하지 않는다. 하나 소크라테스는 늘 사유했다. 바보는 늘 만족하고 즐겁다. 그것이 행복이라면 할 말은 없다. ‘배부른 돼지’란 상징적이고 비유하는 말이다. 아무 생각이 없거나 사유하지 않는 존재를 뜻한다. 반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사유하는 존재 또는 철학적 인간을 뜻한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ōgitō ergo sum)’는 명제도 마찬가지다. 즉 사유하고 있는 순간 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이 명명백백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유하는 인간이어야 온전한 존재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통일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도덕이란 ‘그 시대 사람들의 사회적 감정’이라고 말했듯이, 통일문제도 감정적인 판단과 행동이 앞선다. 북한, 김일성, 6.25 전쟁,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대북인도적지원, 사드, 미국 등을 먼저 살펴보자. 언급한 인물이나 사안 그리고 정책에 대해 ‘사유’를 통해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이 있을까? 일례로 6.25 전쟁에 대해 말하면,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저 나쁜 북한 놈들이 쳐들어왔다. 그래서 쳐죽일 놈들이다.” 이것이 내 고향 친구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배웠다. 한데 6.25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를 물으면 대부분이 잘 모른다. 그뿐 아니다. ‘사드’ 문제를 놓고서 왜 배치해야 하는지, 왜 배치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토론한다는 게 가능할까?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진영논리와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국민적 차원에서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유하지 않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사유와 생각대신, 감정과 진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나쁜 사람이거나 적이 된다.

오늘 어떤 음식을 먹을까, 혹은 무슨 종류의 술을 마실까는 사유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지극히 단순한 뇌의 작용에 불과할 뿐이다. 배부른 돼지와 언제나 만족하는 바보도 사유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비판이다. 사유하는 인간이어야 진보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남북한의 통일문제에 대해 배부른 돼지나 언제나 만족하는 바보의 태도로 접근한다면 매번 필패를 맛볼 수밖에 없다. 더하여 언제나 대립과 갈등 그리고 분열과 분쟁을 일삼을 것이다. 그런 사회와 나라는 불행하고, 점차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통일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남북한의 경제 교류와 협력에 관련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문제, 안보와 관련한 북한의 핵문제, 사드 문제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 등을 감정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일과 문제의 근본을 알 수 있다. 문제의 본질과 그 이유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에 주목했다. 배고픈 고통은 정신적 괘락으로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배부른 행복은 정신적 행복을 주지 못한다. 이제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소크라테스가 돼야 한다. 그래야 통일을 이를 수 있다. 올해부터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 통일문제를 풀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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