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결혼한 누이의 집에서 자랐다. 누이의 남편이 죽고 일곱 명의 조카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일자리마저 잃고 말았다. 너무 배가 고파 자기도 모르게 빵 한 조각을 훔쳤다. 그 일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장발장’ 이야기다.

살아 숨 쉬는 동안 양식이 없어 배를 굶는 고통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그것도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 오갈 데마저 없다면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으랴! 포에르바하가 인간의 문제는 결국 위장의 문제라고 했듯이, 생존하기 위해선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사나흘 정도 끼니를 잇지 못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다. 양식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굶는 단식과 양식이 없을 뿐 아니라 버려진 상태에서 계속 생배를 곯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본 사람은 잘 안다.

젊은 시절 잠시 방황한 기억이 난다. 오늘같이 추운 겨울날 주머니엔 돈 한 푼 없었다. 사흘을 굶고 나니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족들에겐 외면 받고 딱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해서 돈 3천원을 얻었다. 그 돈으로 라면을 사먹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춥고 배고프다는 것과 돈 없고 오갈 데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지 알게 되었다. 일찍이 ‘장발장’을 경험한 셈이다.

빅토르 위고가 쓴 ‘장발장’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는 프랑스 시민대혁명 후에 태어났고, 7월 혁명과 2월 혁명을 겪었다. 혁명이 일어났지만 군부 쿠데타와 왕정복고로 가난과 혼란이 계속 되었다. 특히 루이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19년 동안 벨기에로 망명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장발장이 빵을 훔친 이유는, 너무 배가 고파서이다. 왜 빵을 훔쳤는지 그리고 생사의 기로에서 빵 한 조각을 훔치는 것은 과연 악인가 하는 명제를 우리에게 던져준 서책이다. 한 인간이 절체절명의 기아에 빠졌을 때 국가는, 또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간의 극단적인 기아, 그로 인한 죄의 문제는 어떻게 다루고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차제에 북한의 식량사정과 기아 문제를 짚어보자. 북한에서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몇 명 정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식량이 태부족인 건 사실이다. 내가 잠시 본 혹한의 북한은 참으로 비참했다. 밤이 되어도 불이 없거나 호롱불 정도의 밝기이고, 방바닥은 냉기가 돌 것이 틀림없었다. 의복은 여름옷인지, 봄옷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따듯한 저녁밥은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그렇게 모진 겨울을 나야 하는 북한 동포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렸다.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올겨울 역시 그렇게 보낼 것이다.

정부의 쌀 재고량이 대략 170만톤이다. 적정 재고량이 80만톤인데 두 배가 넘는다. 그중에 50만톤 정도를 사료로 쓴다. 내년에는 사료량을 더 늘릴 계획이다. 쌀값은 폭락하고, 재고는 늘고 사료는 더 늘리는, 참으로 난감하고 이상한 형국이다.

인간은 시대와 이념을 넘어 생존하기 위해 빵을 먹어야 한다. 어릴 적 내가 잠시 겪은 춥고 배고픔, 19세기 장발장이란 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배고픔, 올 겨울 북한동포들이 겪어야 할 기아의 고통은 모두 존엄한 인간의 문제이다.

최소한 배가 너무 고파서 빵을 훔쳐야 하는 것과, 삶을 마감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동물의 먹이로 50만톤의 쌀이 나가고도 120만톤의 재고가 쌓인다. 이를 십분의 일이라도 북한 동포들에게 보낼 수 없을까.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dds)이란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조치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도 북한에 식량을 비롯한 의약품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안보의 대상이나 통일을 이루어야 할 한 민족이다. 우리보다 훨씬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을까?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성경 로마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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