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미셀 푸코가 말하길 억압 속의 광기(비이성)는 질병이 아니라고 했다. 광기는 시대 상황에 따라 질병으로 낙인찍힐 뿐이라고 했다. 억압의 기제가 작동하는 사회에선 이성이 발붙일 틈이 없다. 때문에 비이성적 행위 즉 광기가 발동하게 된다.

오랫동안 폭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인간에게 폭력과 공포의 지속은 지옥이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체제는 인간을 극한 상태로 내몬다. 따라서 저항이란 필연적이고 정당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 저항을 광기라고 치부한다. 결국 정당한 저항을 정신병으로 몰아붙인다.

전체주의 혹은 군국주의 국가는 특징이 있다. 독재를 일삼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규격화한다는 점이다. 생각과 행동을 규격화하는데 모두가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을 요구한다. 만약 독재자가 정해 놓은 틀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게 되면 규제와 처벌이 뒤따른다. 다른 생각과 행동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생각과 행동뿐만 아니라 심지어 머리 길이도, 치마 길이도 모두 동일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야만과 폭력은 더욱 광기 어린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북한과 화해 협력을 주장하는 사람을 ‘종북좌파’라고 매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북한을 추종하는 좌파라는 뜻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과 언제나 적대적이어야 한다. 그 외의 다른 생각과 행동은 불온하고 위협한 짓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규격화하는 것이다. 하나 북한은 적이면서 통일을 이루어야 할 한 민족이다. 때문에 안보의 대상이면서도 대화와 협력의 대상이란 사실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 6.15 공동선언이 탄생했다. “제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이 문구를 두고 적화통일을 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라고 합의한 노태우 정부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김대중 정권이 하는 일은 위험하고 불온한 것이고, 노태우 정권이 하는 일은 선하고 좋은 것이라면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또 하나의 권력인데, 푸코가 말하는 ‘담론’인 셈이다. 이른바 지배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력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에게 특정한 지식과 규율을 마치 진리처럼 구성하는 ‘언술체계’를 담론(discourse)이라고 한다.

‘반공담론’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팽배해있다. 언급했듯이 휴전선 이북과는 항상 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쉽다. 더하여 북한과 화해 협력을 말하면 불온한 사람으로 ‘종북좌파’로 낙인찍힌다. 심지어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마저도 반공담론이라는 더 큰 권력에 지배당한다. 아무개 대통령의 언설은 허용되고, 아무개 대통령의 언설은 허용되지 않는다. 북한과 맺은 어떤 합의서는 좋고, 어떤 합의서는 불온하다. 나아가 대중들도 어떤 합의서를 지지하고 어떤 대통령을 지지하는가에 따라 불온해지거나 혹은 건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불온한 세력이었다. 일제는 부당하게 우리니라를 침략하고 수탈했다. 게다가 애국지사를 탄압하고 양민을 학살하기도 했다. 애국지사들은 일제의 학정과 폭압에 푸코의 말처럼 광기로 맞섰다. 이러한 억압 속의 광기를 질병이 아니라고 했듯이 이봉창, 윤봉길, 안중근과 같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불온한 사람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한 의사들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는 ‘반공담론’에 저항해야 한다. 반공만으로 사회를 옭아매려는 ‘억압’을 뚫어야 한다. 그래야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다. 그것이 광기이고 비이성이라 할지라도 결코 질병이 아닌 정당한 항거라는 사실이다. 정작 불온한 것은 다수를 억압하려는 언술체계 즉 담론(discourse)이다. 그러한 억압과 담론에 저항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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