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2017년 정유년이 밝았다. 2016년은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한 해였다. 어머니의 죽음과 신병을 앓았고, 국가적으로는 난(難)이라 불릴 만큼 권력의 악취를 맡고 추함을 보았다. 다수의 국민들은 이에 저항했다. 인생이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결코 거창하거나 황홀할 필요는 없다. 우리네 어진 서민의 삶은, 비록 된장국에 조기 한 마리라도 편안하게 저녁상에 앉으면 족하다.

정유년은 닭의 해다. 닭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지만, 새벽을 깨우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알고 보면 닭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묘한 동물이다. 하루에 한번씩 알을 낳는다는 건, 배란을 하루에 한번씩 한다는 말이다. 매일 알슬기를 하는 것은 아마도 닭밖에 없을 것이다. 어둠이 지나 동이 틀 무렵에 새벽을 깨우고, 매일 알을 낳는 닭이니 참으로 부지런한 비금주수(飛禽走獸)이다.

정유년이라고 하면 정유재란이 떠오른다. 1597년 강화협상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재차 도발한 전쟁이다. 1592년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열흘 만에 경상도 상주를 점령하고, 다시 열흘 후 한양까지 침략해왔다. 왜군이 4월 13일 부산포로 쳐들어왔는데, 선조가 한양성을 떠날 때가 4월 30일이다. 조영선, 조원리, 신덕린 등 10여명이 선조에게 “한양성을 버리시면 아니 되옵니다”라며 울부짖었지만 그대로 떠났다.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선조 임금이 한양성을 떠나자 흥분한 백성들이 장례원과 형조에 불을 질렀다고 기록돼있다. 그뿐 아니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까지 모두 불을 질렀다. 평양성마저 버릴 때에는 민심이 더욱 험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너희들이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평양 성문 앞으로 달려와 백성들이 임금과 신하들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말이다. 모두 소매를 걷어 붙이고 손에는 여러 가지 무기와 몽둥이를 들고 평양성으로 달려온 것이다. 한양성은 피치 못해 버렸다면, 평양성은 결사항전 해야 한다는 것이 백성들의 뜻이었다.

그러나 선조임금은 결국 정주를 거쳐 의주로 떠났다. 그리곤 오매불망 명나라의 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명나라 원군을 천군(天君)이라 했다. 명나라 원군이 오고 나서인데, 명나라 장수 진린이 출병할 때 친히 청파까지 나가서 배웅을 했다. 이여송은 평양성 전투 이후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고 오히려 철군을 하려 한다. 장세작이라는 명나라 장수는, 철군을 만류하는 순변사 이빈에게 발길질까지 한다. 불가피 할 수도 있지만, 남의 나라 힘을 빌리게 되면 어느 정도의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임진왜란은 오랜 역사 속의 일이라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처참하고 끔찍하기 짝이 없다. 한데 이러한 와중에도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황해도 감사 유영순, 윤승길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탐관오리의 전형을 보인다. 이때가 바로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 해인 병신년이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치가 곧 외치이고 외치가 곧 내치라는 사실이다. 내치는 민을 본으로 삼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 임금이 백성을 버리면 백성도 임금을 버린다. 순자의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조임금이 한양성을 버리고 평양성마저 버릴 때 백성들은 분노했다.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간 것이나 다름없다. 백성을 배신하고 군주의 도리를 저버린 것이다. 결국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가고 신음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선조임금의 행동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다.

420년 전의 정유재란은, 비극적이었지만 왜적의 침략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죽고, 고시니 유키나와도, 가토 기요마사도 쫓겨 갔다. 그 와중에 이순신 장군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유년 닭의 해에는 왜적을 물리치고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구태와 병폐 그리고 농락이라는 어둠을 이기고 새벽을 깨우는 해가 돼야 한다. 닭은 새벽이 오기 전까지 알을 품으며 선잠을 잔다. 어쩌면 잠들지 않고 깨어 있기에 새벽을 알릴지도 모른다. 모두 일어나 새벽을 깨우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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