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연구소장

 

어느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속의 줄거리도 아니다. 10대 시절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다. 한적하고 작은 어촌 마을의 바다에서다. ‘탕!’ 하고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처음엔 어디서 울렸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해안초소의 초병이 우리를 겨누어 총질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총탄은 바로 내 옆을 스쳤다. 이십여분 동안 계속되는 총탄 세례에 열두 살의 어린 나는 하얗게 공포에 질렸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심포(深浦)라고 부르는 내 고향은 작고 깊은 포구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남쪽에 있는 포구로 동네 사람들이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살았다. 여름방학, 고등학생인 나의 형과 이웃에 사는 중학생 명보 형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바다로 놀래미 낚시를 갔다. 작은 배에 노를 저어서 3백 미터 남짓 바다 가운데로 나갔다. 새끼줄로 묶은 돌로 닻을 내리고 저녁 밥상에 오를 생선회를 생각하며 평온하게 낚시를 했다.

그날 사달이 난 이유는 우리 셋이 탄 배가 초소에 ‘출항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 멀리 조업을 나가지 않고 낚시를 하는 것은 통용됐다는 점이다. 때문에 민간인이 탄 무동력 비무장 선박에다, 미성년자 세 명이 타고 있는 조그만 배를 향해 백주 대낮에 총격을 가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총질을 해댄 이십여분, 우리 셋은 생사가 오가는 위험과 엄청난 공포에 떨어야 했다. 포구선창에 배를 대자마자 명보 형이 군인에게 대들었다. 내 형도 함께 대들었다.

알고 보니 사병더러 우리에게 총격을 지시한 사람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나이가 서른쯤으로 보였고, 대낮인데 술에 취해있었다. 문제는 그 대위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우리 셋은 군용 트럭에 실려 산속에 있는 부대로 끌려갔다. 가장 먼저 어린 나를 땅바닥에 꿇려 앉히면서 야전 삽 자루를 오금에 끼웠다. 권총을 찬 대위는 군홧발로 한동안 내 허벅지를 짓밟았다. 그 다음은 중학생 명보 형 그 다음은 고등학생인 우리 형 이렇게 차례차례로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 나는 형들이 맞을 때 지르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결국 두 형은 제 발로 걷지 못했고, 내가 어렵게 부축하여 산 중턱까지 내려왔다. 마을 어귀에 이르러 어른들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물론 특히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군부대 간부에게 항의를 했으나 그렇게 강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유신시절이라는 게 그만큼 서슬이 퍼랬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더 섬뜩했던 것은, 중대장이라고 한 그 대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인데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오늘 모처럼 피 맛 한번 잘 봤다.” 그 뒤로부터는 놀래미 낚시와 아예 담을 쌓았다. 쳐다보기도 싫었다. 어린 나이지만 그 대위에 대한 복수심이 날로 더해갔다. 내가 크면 반드시 혼을 내주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 날의 불상사가 분단이 원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분단 상황에서 군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위력이 강하다. 게다가 권위주의 시절에는 군이 우선이었기에 ‘군관민’이라고 불렀다. 군이 먼저고 민이 맨 나중이다. 이것이 분단의 원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군인의 힘이 엄청난 시절이 있었다.

남한뿐만 아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선군정치’라 하여 군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은 무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북한의 주민에게도 묵시적인 위협을 준다. 한편으로는 정권을 유지하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또 외부세계에 대해서도 위력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이다. 군을 가장 중시하는 통치방식은 대단히 후진적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근대와 경찰을 동원한 체제는 잠시 강할지 몰라도 그리 길지 않았다. 통치의 방법이 무력에 의존하여 나라 안팎을 다스린다. 어떤 때에는 자국민을 무참히 짓밟기도 한다. 남과 북 모두 군을 중시한 역사는 반성해야 한다. 특히 북한은 선군정치를 종식해야 한다. 총구를 앞세우고 군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국가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을 거두고 군대를 뒤로 물러야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사실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