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우리나라에서 열린 가장 큰 세계골프대회인 2015 프레지던츠컵은 11일 최종 라운드에 나선 두 남자에 의해 우승의 향방이 갈렸다. 기막힌 개인 스토리를 가진 두 남자는 대한민국의 배상문(29)과 미국의 빌 하스(33)였다. 배상문은 인터내셔널팀 단장 닉 프라이스(58, 짐바브웨)의 추천에 의해 생애 처음으로 프레지던츠컵 무대를 밟았고, 빌 하스는 미국팀 단장인 아버지 제이 하스(62)의 추천을 받았다. 둘은 2명씩을 와일드카드로 고를 수 있는 단장의 권한에 의해 지명됐던 것이다.

둘이 선택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곡절이 있었다. 올해 초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이며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배상문은 이번 대회를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배상문은 세계랭킹이 프레지던츠컵 출전 조건에 들지 못했지만, 대회 장소인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두 차례(2013·2014 신한동해오픈)나 우승을 차지하는 강한 면모를 보여 유럽피언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한 안병훈을 제치고 출전 선수 중 맨 마지막으로 와일드카드로 인터내셔널팀에 합류했다.

하스는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5개 대회에 출전해 휴매나 챌린지 우승 포함 톱10에 5차례 들었고, 톱25에는 12차례 진입해 상금순위 24위(약 36억 2000만원)를 차지했다. 프레지던츠컵 미국팀 랭킹 11위에 올랐던 하스는 비록 공식 랭킹에서는 밀렸지만 아버지 제이가 회심의 카드로 선택했던 것이다. 만약 미국팀이 패배를 할 경우 아들을 선택한 그의 결정은 ‘무모한 도박’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높았다.

둘의 승부는 대회 마지막 날, 마지막 대결, 마지막 18번 홀에서 극적으로 판가름났다. 14.5-14.5로 동점인 상황에서 팀의 마지막 주자로 경기를 펼친 둘은 18번홀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18번홀에서 배상문이 샷 미스를 하는 바람에 미국팀이 우승, 대회 6연패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배상문은 16번홀에서 3.1m 파 퍼팅을 성공시켰고, 17번홀에서도 21m 거리의 벙커샷을 핀 30㎝에 붙이는 등 접전을 펼쳤다. 18번홀(파5) 주변에 있던 팬들은 17번홀까지 1홀 차로 뒤진 배상문을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반겼다. 이 홀에서 배상문이 이기면 인터내셔널팀은 미국팀과 공동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응원의 함성은 더욱 컸다. 그러나 배상문은 18번홀 세 번째 어프로치 샷에서 뒤땅을 치는 실수를 했고,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설 줄 몰랐다. 결국 배상문은 2홀 차로 졌고, 인터내셔널팀도 최종 승점 14.5-15.5로 패했다. 이번 대회에서 2승을 거두며 유일한 한국선수로서 체면을 세워줬던 배상문은 대회가 끝난 후 군에 입대, 병역을 마칠 예정이다.

빌은 18번홀서 벙커에 빠진 세 번째 샷을 1.8m 붙이는 절묘한 실력을 과시했으며, 배상문으로부터 ‘컨시드’를 받아 버디를 낚아 치열한 승부를 승리로 이끌었다. 빌은 경기 직후 감정에 복받친 듯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이것이 골프다”고 말했다. 아버지 제이는 미국 TV 인터뷰에서 “빌을 최종 라운드에 내보낼 때, 승부를 결코 장담할 수 없었다”며 “그러나 빌은 정말 아름답게 플레이를 펼쳤다”고 울먹이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제이는 아들 빌을 12명의 미국선수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아들’로 대우했는데, 최종 순간 우승을 차지하면서 특별히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물론 둘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아니었다. 팀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4연승 행진을 구가해 절대 열세일 것으로 여겨졌던 인터내셔널팀의 막판 추격에 불을 당긴 남아공 듀오 우스투이젠과 그레이스, 그림 같은 벙커샷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존재감을 보였던 미국팀의 ‘필드의 신사’ 필 미켈슨도 프레지던츠컵 대회의 진가를 높였다. 하지만 극적인 스토리로 최종일 뜨거운 승부를 펼친 배상문과 빌 하스는 골프의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해줬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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