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김영삼(YS)은 축구 선수였다.’ 1992년 12월 19일,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YS가 김대중(DJ)을 193만표 차로 따돌리고 대통령이 되자, 모 스포츠 신문은 1면 톱으로 충격적인 보도를 했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가 학생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는 내용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주화 투사로 국민들에게 각인됐지만 그가 축구 선수였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라이벌 신문의 ‘특종’ 보도를 확인하기 위해 필자가 근무했던 신문의 편집국은 뒤늦게 취재를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취재 결과, 김영삼 대통령은 정식 등록 선수는 아니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는 순수 아마추어 선수였다. 5년제 경남중 재학시절 축구 경기를 놀이삼아 한 정도였다는 데, 다소 과장된 보도였던 것이다.

“학교 체육 시간과 방과 후 친구들과 축구를 한 것을 갖고 축구 선수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에 축구 선수가 아닌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당시 담당 스포츠 데스크는 상대지의 보도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상대지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학생시절의 개인적 취미활동을 너무 부풀렸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무리 스포츠 전문지였으나 정확한 팩트에 입각한 보도를 하기로 하고 기각키로 결정했다.

YS 재임시절 스포츠를 좋아했던 대통령, 스포츠를 싫어했던 대통령으로 의견이 갈려있다. 스포츠를 사랑했던 것 같으나, 한편으로 골프에 반대하는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쳤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문 스포츠맨은 아니었지만 스포츠를 좋아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조깅’이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다. 서슬 퍼런 5공 치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 야권 인사들과 함께 등산으로 건강을 다지며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새벽마다 조깅을 빠트리지 않고 해 ‘조깅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앞둔 대표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방문할 때도, 새벽에 대표선수들과 함께 조깅을 하기도 했다.

스포츠 경기장에 공개적으로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4년과 1995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 2년 연속 시구를 맡았고, 1995년 프로야구 개막전 삼성과 LG의 잠실 경기에도 시구자로 나섰다. 1995년 5월 한국과 유벤투스의 축구 친선경기, 6월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대회에서 연달아 시축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시절 한국 스포츠 최대의 업적으로 꼽히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유치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는 평을 듣는다. YS는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내걸었으며, 대통령 취임 뒤 대회 유치에 큰 힘을 주었다. YS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93년 12월 월드컵 공동 유치에 성공했으며 1994년 유치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월드컵 체제를 가동시켰다.

하지만 골프에 국한하기는 했지만 스포츠정서에 반대하는 일면도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직자 ‘골프 금지령’의 원조였다. 통일민주당 총재시절인 1989년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와 안양 CC서 라운딩을 하던 중 드라이버샷을 하다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던 사진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YS는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재임 기간 중 골프를 안 치겠다고 하면서, 그의 재임 기간은 ‘골프계의 암흑기’로 통했다. 경제5단체장 회식에서 “아직도 골프를 열심히 치십니까”라는 YS의 말에 공직자들은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느라 골프를 철저히 자제했으며 활성화의 조짐을 보였던 골프장과 골프산업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명분상으로는 공직자 근무기강과 부패방지를 위해 골프를 금지시켰지만, YS가 골프에서 당한 ‘망신’ 때문에 골프에 보복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얘기가 지금도 일부 골프 관계자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YS의 골프 금지로 크게 속앓이를 했던 골프계가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 등장으로 ‘골프 금지령’이 풀리면서 골프장경영인협회가 ‘골프 광복절’이라는 담화를 발표했던 것에서도 골프관계자들이 얼마나 YS에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가를 알 수 있다.

YS는 한국 민주화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으면서도 내치, 특히 경제문제 등에서 IMF 체제를 불러오는 실정을 범하며 역사적으로는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보다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스포츠에서도 그의 평가는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도 낮은 편이다. 자신은 운동을 좋아했으면서도 국민적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골프를 금지시키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YS가 어질 적부터 친구들과 축구를 통해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스포츠의 규칙에서 법과 사회적 룰을 따르는 방법을 터득하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거인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스포츠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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