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북한군 사격 선수 리호준은 지난 1972년 뮌헨올림픽 사격 소구경 복사에서 600점 만점에 1점 모자라는 세계신기록으로 북한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뒤 우승 소감에서 “적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는 발언을 해 각국 기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게릴라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 뮌헨올림픽 대회가 24시간 중단되고 인질 전원과 테러범 5명, 서독 특수부대 요원 1명 등 모두 17명이 숨지는 비극의 와중에서 남한의 적화통일을 노리는 북한군 사격 선수가 먼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왔다. 북한은 군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두 리호준처럼 사격을 잘해, 남북한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전투력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마저 가졌다.

군인체육에 대한 첫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이 아닌, 북한군 사격 선수 리호준으로부터 시작됐다. 중학생이던 당시, 북한은 경제력에서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으며 군사력, 스포츠 국력에서도 앞서 있었다. 대부분 군인선수들로 구성해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북한이 뮌헨올림픽에서 금1, 은1, 동 3개로 은메달 1개에 그친 남한보다 월등한 성적을 올린 것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운영한 ‘병영 국가’ 체제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다.

남북대결이라면 모든 것을 걸고 사상 결단으로 승부를 펼쳐야 했던 당시 북한에 밀린 남한은 이후 본격적으로 정예 엘리트 장교를 양성하는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각 군에서 스포츠팀을 집중적으로 육성했으며 병사들의 전투체력을 양성하기 위해 ‘군대스리가’ 축구와 족구 등을 장려했다. 공수부대 장교로 근무했던 필자만 해도 1980년대 초반 매주 수요일 전투체력의 날에 오후 내내 축구만 했다.

스포츠 기자로 입문한 뒤 군인체육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같은 개인적 경험과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군인 선수들의 효율적인 훈련을 위해 국군체육부대와 88사격단이 창설됐다. 예비역 군장교로서 군인에 대한 애정과 함께 군인체육을 관심 있게 취재했다. 사격 담당 기자를 맡아 1987년 베이징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 1988년 동독 세계사격선수권대회, 1991년 멕시코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사격대회 등에 88사격단 선수들과 함께 동행, 현장을 지켜봤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구기 종목에서 상무팀이 좋은 성적을 올릴 때, 기사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겼다.

지난 2일 개막된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접하면서, 필자가 겪었던 군인체육의 경험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국내서 처음으로 유치한 세계군인체육대회의 위상이 그동안 고속 성장한 우리 군인체육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1995년 대회 창설 이후 6번째로 한국에서 열리게 된 세계군인체육대회는 국제군인스포츠위원회(CISM)의 이념 아래 스포츠를 통한 세계군인들의 우정과 화합을 위한 세계군인들만의 한마당 스포츠축제이다. 100개국에서 87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이번 세계군인체육대회는 군인체육에서 ‘변방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중심국’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기회가 됐다.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 개최를 통해 세계인류애와 세계평화유지를 노력하는 국가로서 국격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청신호를 밝혔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 북한의 대회 참가를 위해 국제군인스포츠위원회 회장과 조직위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은 끝내 불참한 것이 아쉬웠다. 그 전 대회까지는 매번 참가했던 북한은 남한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미묘한 남북관계문제로 참가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군인스포츠도 40여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남한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북한 스포츠는 이제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군인스포츠도 예전 일방적인 열세에서 현재는 우리가 상대적 우위를 확보했다. 앞으로 남북 군인스포츠는 적대적 대결과 경쟁체제를 지양하고 상호 우호 증진과 화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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