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워털루의 승리는 이미 이튼의 운동장에서 이뤄졌다”는 영국 웰링턴 장군의 유명한 말이 필자를 비롯한 고교 친구들에게는 “지금의 변치 않은 우정은 고교 때 축구를 하던 학교 운동장에서 피어났다”는 말로 다가오는 듯했다. 11월의 마지막 주말인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의 불고기집 사리원에서 열린 고교 은사님 고희연 및 송년회에서 느꼈던 감회이다.

이날은 고교 동창 20여명이 부부동반으로 학창시절 꿈을 심어줬던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40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훈훈한 사제의 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필자를 포함한 고교 동창들은 1974년 기술입국의 꿈을 갖고 서울공고의 문을 두드렸다. 이때 처음 대면했던 선생님이 바로 이날 잔치의 주인공이었다. 한양공대를 나온 선생님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첫 직장을 교사로서 출발했다. 기술인으로서 살아갈 금속과 전공수업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지도한 선생님은 스포츠에도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고교 1학년 봄이었다. 어려운 시절, 학교생활을 통해 함께 만났던 필자를 비롯한 고교 동창들에게 축구는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과 대항 축구대회에서 라이트윙을 맡았던 필자는 다른 친구들과 방과 후까지 운동장에 남아 선생님과 함께 연습경기를 가지며 호흡을 나눴다. 예선전에서 다른 과 골키퍼가 필자의 슛을 막다 넘어져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는 것을 안쓰럽게 지켜보기도 했다. 결승전까지 승승장구하며 기세 좋게 올라갔으나 아깝게 이웃반이었던 전자과에 0-1의 쓰라린 패배를 당했던 것은 아직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날 고희연에 참석했던 축구 멤버 몇 명은 “못나고 힘들었던 고교 때 축구를 했던 게 가장 행복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순수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왔던 것은 축구가 맺어준 인연 때문이었다”며 “축구를 통해 서로 힘을 합치는 협동 정신,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 정신, 최선을 다하는 자세 등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가치를 몸으로 익히고 터득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실업계고는 대학 진학 목표로 1학년 때부터 입시 공부에 매달렸던 인문계 학교와는 달리 현장 중심의 전문 실기 공부를 하며 스포츠를 중시하는 교육에 주력했다. 과 대항 체육대회, 실업계 고교 대항 종합 체육대회 등은 전교생들이 참가하며 소속 학과와 학교의 명예를 빛내고 단결과 협동심을 배웠다. 스포츠를 통해 남을 위한 희생을 더 없는 명예로 여겼으며 승부에서 결코 지지 않는 경쟁력도 갖출 수 있었다.

축구 멤버였던 동창은 졸업 후 장교로 최전방 철책 소대장을 하다 지뢰사고로 순직한 이도 있으며, 필자는 ‘더 많이 배운 만큼 더 많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친다’는 각오로 젊은이들이 가기를 꺼리는 특전사에 장교로 지원, 근무를 하기도 했다. 대기업체 CEO와 임원 출신, 의사, 공기업 연구원, 탄탄한 중소기업체 사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친구들도 많다.

스포츠 분야에서 20여년간 기자 생활을 했고, 신문사 편집국장을 거쳐 스포츠 저널리즘 박사학위 취득 후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비정상적인 지금의 고교 교육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축구를 통해 친구를 알고, 인생도 배우던 우리 때와 비교해 ‘공부벌레’로 만드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날 고희연에서 선생님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최고의 스승님께 드립니다’라는 금 1냥으로 된 황금글자 상패를 드렸다. 상패에는 “마흔 한 해 전 이름 봄, 반곱슬에 장발, 회색 작업복, 청색 양복바지, 두툼한 원서, 길다란 지침봉과 함께 더벅머리 저희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고희를 맞으신 스승님, 오래도록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빌며, 제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담아 ’대한민국 최고의 스승‘으로 모시며 감사드립니다”라는 글귀를 새겼다. 열정적으로 지도했고, 스포츠를 하도록 적극 장려한 스승님은 1년 반 선생님으로 근무하다가 뉴질랜드로 국비 유학을 다녀온 뒤, 현대정공에 입사해 현대자동차 사장까지 지내신 성병호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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