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긴장과 화해의 현장’ 판문점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특수지역이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은 높이 5㎝, 너비 50㎝의 콘크리트 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턱을 넘어 북쪽으로 가면 ‘월북’이며, 남쪽으로 오면 ‘월남’이다. 평상시는 남북 군인들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대치해 있다. 하지만 남북회담이 열리면 일시적으로 통행이 허용된다. 회담을 위한 남북대표단과 취재기자단, 회담 관계자 등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왔다 갔다 한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남북 체육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을 때, 취재기자로 회담 취재를 위해 군사분계선을 수시로 드나든 적이 있었다. 회담이 북쪽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리면 회담 도중 중간 기사 송고를 위해 남쪽 평화의 집으로 내려와야 했다. 또 1991년 5월 세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평양 경기 취재를 위해 입북했을 때, 군사분계선 콘크리트 턱을 넘어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

군사분계선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북한 경비병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노려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의식하며 ‘적지’로 들어갔다가 ‘아군지역’으로 내려올 때면, 마치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혼미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고도의 긴장감을 갖고 북쪽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취재하는데 크게 두려움을 갖지는 않았다. 기자로서 엄중한 책임감을 다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2박 3일의 평양 취재를 위해 입북했을 때는 남북회담 시 군사분계선을 왔다 갔다 할 때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금단의 땅’ 깊숙이 들어간다는 설렘과 궁금증을 안고 도착한 평양은 다른 세상이었다. 칙칙한 잿빛 도시, 표정없는 주민들의 모습, 대동강 변 능라도의 5·1 경기장, 김일성 경기장, 개선문, 당 선전구호로 가득 찬 네온사인 등은 남쪽 방문인사들에게는 전혀 낯선 광경이었다. 남북 관계가 화해무드로 무르익었을 때였음에도 남쪽 사람들에게 북한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방지대’였다.

수십 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전례 없이 남북 긴장이 고조되며 판문점에서는 남북고위급접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평양 5·1 경기장에서 남한 경기도와 강원도 선발팀이 참가한 제2회 국제유소년 축구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판문점에선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포격 도발로 인한 대치상황과 관련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리는 데 반해 평양에서는 남북이 스포츠 교류를 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남북이 극도의 대치상황에서 열린 평양 유소년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은 때가 때인 만큼 다른 어느 방북단보다 안전과 복귀에 큰 관심을 모았다. 우리 선수들은 다행히 23일 5, 6위 결정전을 치르고 25일 중국을 거쳐 귀국했다. 하지만 고교생들로 구성된 어린 선수들이 남북 간 전쟁위기의 불안함 속에 제대로 경기를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북한의 두 팀이 모두 결승에 올라 우승을 다툰 것으로 볼 때, 우리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치른 것 같지는 않다.

불안한 남북관계 속에 스포츠 교류가 이루어진 것을 보면서 100여년 전 1차 세계대전의 ‘크리스마스 휴전 축구’가 생각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도중 영국군과 독일군이 전쟁을 잠시 멈추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휴전을 하고 축구 경기를 한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영국 슈퍼마켓 체인점 세인스버리의 크리스마스 광고로 사용됐으며, 세계적인 록밴드 비틀즈의 멤버인 폴 메카트니가 ‘평화의 담뱃대(Pipes of Peace)’라는 싱글 앨범에서 소재로 노래를 불렀다.

남북한이 신뢰를 통해 평화를 쌓기 위해선 한핏줄, 한민족, 한마음으로 따뜻한 공감을 이루며 유대감을 넓혀 나가야만 한다. 남북대화가 일단 끝났지만 앞으로 남북 간에 ‘크리스 마스 휴전 축구’보다 더 인간적인 감동이 넘치고 기적적인 일이 이루어지기를 7천만 남북한 민족은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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